제주 조랑말이 서울로 상경했다. '게으름뱅이'란 뜻의 제주방언 '간세'가 이 조랑말 인형의 이름이다. 무수히 버려지는 옷감들을 주워 한땀 한땀 바느질했다. 꼼꼼한 바늘땀이며 따뜻한 촉감이 으뜸인데, 전문 디자이너의 솜씨가 아니란다. 제주 사는 '아주망'(아줌마)들 솜씨란다. 조랑말을 따라 그들이 서울 나들이에 나섰다. '작가'가 되어 생애 첫 전시를 한다. '생명을 깁는 따뜻한 바느질전'(갤러리 아트링크에서 27일까지)이다.
'간세인형공방조합'의 13명 여성이 그 주인공. 제주 토박이가 반, 육지에서 온 '이민자'가 반이다. "서울생이지만 콩깍지가 씌어 제주 남자한테 시집왔다"는 조합장 안묘원(56)씨가 간세인형의 탄생기를 들려준다.
"사단법인 '제주올레'쪽 아이디어였죠. 돌하르방 말고 제주의 또 다른 상징물을 만들어 올레길에 사는 지역 주민들을 위한 수익사업, 고용 창출로 이어보자 했던 거죠. 그 아이디어가 지식경제부가 공모했던 '지역 커뮤니티 비즈니스 사업'에 선정돼 본격화된 거고요."
처음엔 제주올레 자원봉사자들을 중심으로 인형을 만들었는데 말이 아닌 강아지, 돼지 형상이 나와 전략을 수정했다. "바느질에 취미가 있고 잘할 수 있는 분들을 다시 모집했어요. 제주시와 서귀포시에 두 개의 공방을 두고 지난해 4월 말부터 시작했습니다."
오정숙(53)씨는 퀼트를 2년 한 경력으로 간세인형공방에 합류했다. 한 달에 50개꼴로, 지난 1년간 바느질한 조랑말 인형이 1000개에 이른다. "살림만 했죠. 막내까지 대학에 보내고 나니 할 일이 없데요. 우울해지고. 그때 운명처럼 간세인형을 알게 된 거죠." 기계수를 잘 놓는 박민숙(39)씨는 수 놓인 간세인형으로 인기가 많은 '작가'다.
"공방은 제 삶의 샘물 같은 곳이에요. 남편 직장 때문에 제주에 왔는데 늘 혼자고 외로웠거든요. 올레길 걷다가 인형 얘기 듣고 합류했는데 이쁘게 만드느라고 개수를 많이 못 빼요." 제주 토박이 김나미(48)씨는 노후대책을 세우기 위해 공방에 합류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워낙에 바느질, 손뜨개를 좋아했는데 인형 만들면 돈도 준다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는 거죠."
자신을 '올레 이민자'로 칭하는 김하영(45)씨의 사연이 애틋하다. "심폐가 약해 5m 이상 달리지 못하는 아이 때문에 올레길을 걷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아주 건강해졌어요. 올레길 수혜자로서 내리 사랑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인형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제게 인형 작업은 명상 그 자체입니다. 내 아이를 위해 기도하고, 누군가와의 맺힌 마음도 풀고요. 느리지만 꼼꼼하게 만들다 보면 나 자신이 치유되는 걸 느껴요."
이들은 오전 10시 반쯤 공방에 출근해 오후 4시 반쯤 퇴근한다. 자기 능력만큼 인형을 만들고 개수에 따라 월급을 받는다. 안묘원씨는 "보이지 않는 경쟁이 치열하다"고 귀띔했다. "작가정신이죠. 본을 어떻게 떠야 더 예쁘게 나올까, 천과 스티치(바늘땀)의 색상 대비는 또 어떻게 이룰까, 구슬을 달까 수를 놓을까 등등 프로들 못지않은 노력이 굉장하지요."
그 노력으로 '작품'이라 불리어도 손색없는 지금의 간세인형이 탄생했다. 실제로 이번 전시에는 조합원들이 자기만의 '작품'으로 만든 조랑말 인형들을 따로 전시한다. 올레길을 다녀간 명사들이 만든 간세인형도 선보이지만, 첫눈에도 질적인 차이가 확연하다. 한복디자이너 이효재의 '간세인형'도 전시되지만, "에휴, 간세에 관한 한 효재든 앙드레 김이든 우리 실력 못 따라오죠" 장담하는 이들이다.
1년 새 '직업병'도 생겼단다. "지나가는 사람들 옷만 눈에 들어와요. '아, 저거 간세인형 만들면 참 이쁘겠다' 하고 쳐다보지요. 한번은 이문세쇼가 제주에서 열렸는데, 이문세씨가 입은 청바지 뒷주머니에 비즈(구슬장식)가 붙어 있는 거예요. 노래는 둘째고 '어머, 저거 딱 간세인형인데' 했다는 거 아니에요." 인형 만드는 천은 일반인들에게 기부를 받는다. 한복천, 이불겉감, 넥타이, 양복지, 커튼지 가리지 않는다. "걸레, 행주만 아니면 다 돼요. 하하!"
바느질하다 마음에 안 들어 가위로 잘라내기도 여러 번. 그러는 사이 인형과 정이 흠뻑 들어 자기 간세인형이 팔려나갈 땐 딸 시집 보내는 것처럼 섭섭하단다. "버려지는 천들이 나의 손끝을 통해 다시 생명을 얻는다는 사실이 기뻐요. 잘 만들어진 것은 아까워서 집에 가져가고 싶은데 그럴 수 있나요. 돈 벌려고 하는 일 아니고, 아름다운 제주올레 길 많이들 걸으시라고, 상처받은 마음 치유받고 가시라고 조랑말 만들어요."
일반 간세인형은 1개에 1만5000원, 조합원들이 이번 전시를 위해 '작품'으로 만든 것은 1개 10만원에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