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심상정·노회찬 전 의원이 민노당을 떠나 진보신당을 만들 때 울림이 있었던 건 두 사람이 민노당 안의 종북(從北)세력을 공개적으로 고발하고, 이들과의 결별을 행동으로 보여줬기 때문이었다. 그 일로 정치권 안에서 설(說)로만 떠돌던 북한 연계세력의 윤곽이 드러나고, 친북(親北)을 넘어 북한 정권을 추종하는 세력이 엄존함을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게 됐다. 심·노씨 지지자들은 차제에 종북주의를 청산, 민노당의 이미지를 바꾸자고 외쳤으나 당을 떠나야 한 건 오히려 그들이었다. 오랜 세월 당을 함께 해온 그들 눈에조차 '종북'으로 비친 이들을 감싼 세력이 그 당에선 다수파이고 기득권이었던 것이다.
그 몇 줌의 기득권도 무시할 수 없는 게 현실정치인 모양이다. 요즘 야당가에서 민노당에 대한 대접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에도 불구하고 북한 정권을 싸고도는 민노당의 행태는 예전 그대로다. 그런데도 더이상 그런 꼴을 못 보겠다고 갈라섰던 이들이 민노당과 재결합을 모색 중이란 설이 떠돈다. 3년 전 종북 청산 논란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다.
유시민 대표의 국민참여당도 발을 걸친다. 민노당과 진보신당, 둘만 합당(合黨)하지 말고 자신들까지 셋이 합치자는 제안이다. 한편에선 민주당의 무상복지 시리즈를 때리면서 다른 한편으론 그 무상 시리즈의 원조 격인 민노당과 살을 섞자는 걸 이해하려면 머리가 지끈거린다. 그저 민주당을 상대로 대선후보를 따내기 위해 덩치부터 키우려는 셈법이려니 하고 넘어가면 속은 편하다.
유시민 세력 대하듯 그렇게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데가 민주당이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이달 초 민노당·진보신당·국민참여당 사람들과 함께 한 토론회에서 "4·27 재·보선 이후 (범야권의) 가치동맹 추진기구를 만들어 연말까지 단일정당을 만드는 일을 끝내자"고 제안했다. 내년 총선과 대선의 승리를 위해 국민참여당은 물론 진보신당·민노당과도 한몸이 돼, 하나의 정당이 되고자 한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체제의 대전환을 위해 주체가 필요한데 민주당만 갖고는 어렵겠다는 한계를 느낀다"고 고백한 그는 "민주당이 집권 시절 추구한 한·미 FTA에 대한 민노당의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민주당은 지난해 10월 전당대회에서 당헌과 강령을 바꿔 '진보적 민주당의 깃발'을 다시 세웠다"는 말도 했다. 그가 민주당의 진보적 변화의 상징으로 꼽은 건 '보편적 복지' 정책의 채택이었고 '복지국가 단일정당'이 그가 말하고자 한 가치동맹의 핵심이었다.
정 최고위원은 민주당 지도부 중의 한 사람일 뿐, 당 입장을 공식 대표하는 정치인은 아니다. 그러나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내내 집권당의 맨 앞줄에 있었고 대통령 후보까지 지낸 인물이기에 그의 말엔 여전히 무게가 실린다. 그 토론회 이틀 후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 회의에서 이인영 최고위원은 정 최고위원의 단일정당 안을 소개하면서 "대환영"이라고 말했다. 정세균 최고위원 역시 "범야권의 통합은 최선, 연대는 차선"이라고 말해왔다. 이렇게 보면 그동안 민주당이 내놓은 무상복지 시리즈가 그냥 특정 분야의 정책 차원에서만 나온 것으로 읽히진 않는다. 민노당과의 '가치동맹'까지 주장하는 이들이 앞장서 외치고 당이 뒤쫓아온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민주당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좌파정당들과의 연대와 무상급식 공약으로 재미를 봤다. 그렇다 보니 지방선거 이후 좀 더 왼쪽으로 가는 게 선(善)이고 이를 비판하는 건 악(惡)인 양하는 분위기가 종이에 물 번지듯 퍼져 나가고 있다. 민노당과의 연대를 넘어 합당 주장까지 공공연하게 나오는 건 바로 이런 배경에서일 것이다.
민주당 안에 민노당에 지나치게 다가서는 당의 좌(左)편향을 걱정하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없지는 않다. 김대중 정부에서 과기부 장관을 지낸 김영환 의원은 민주당이 다시 집권하려면 중도세력을 끌어안아야 하는데 현재의 좌편향으론 불가능하다는 문제 제기를 공론화하고 나섰다.
민주당이 민노당과의 일시 연대로부터 합당에 이르기까지 여러 갈래 중 어떤 길을 택할지 예단할 수는 없다. 다만 아무리 걱정하고 제동을 거는 목소리가 나오더라도 민주당이 민노당을 대접하고 민노당과 함께 가고자 하는 큰 흐름은 적어도 내년 말 대선까지는 이어질 게 분명해 보인다.
이건 우리 야당과 정당사에 페이지를 달리할 변화를 몰고 올지도 모를 흐름이다. 그 흐름 속에서 전통 야당의 맥(脈)을 이어온 세력에 민노당적 요소가 어느 정도 섞이게 될지, 그리고 민노당 내에서 그토록 시끄러웠던 종북주의 논란은 또 어떻게 정리될지 관심 있게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