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하라 에리코(大原枝里子·33)씨는 18일 미야기(宮城)현 게센누마(氣仙沼)시의 영안실에 누워 있는 남편 요시나리(良成)씨의 뺨에 묻은 진흙을 쓸어내렸다. 그는 남편에게 입을 맞춘 다음 귀에 대고 "사랑해요"라고 속삭였다. 남편의 뺨과 입술, 그리고 귀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20일 오하라씨 부부의 이야기를 보도한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오하라씨 가족이 사는 미야기현 게센누마시 모토요시초(本吉町) 데라타니(寺谷)는 이번 지진과 해일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 중 하나다. 11일 오후 지진으로 집이 흔들리고 해일이 온다는 소식이 들리자 오하라씨는 대피소에 가기 위해 두 딸 리오(2)와 리아(5개월)를 안고서 차에 올라탔다. 차에 타기 직전, 운송회사에서 운전사로 일하는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괜찮아? 이제 연락이 안 될지도 모른다"는 남편의 말에 오하라씨는 제대로 대꾸도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울부짖는 아이들을 두 팔에 안은지라 얘기할 정신도 없었다. 남편과의 마지막 통화였다.

오하라씨는 근처 초등학교에 대피하기로 했다. 출발한 지 20분 만에 도로는 피난 차량으로 가득 찼다. 차들이 움직일 기미가 안 보이자, 오하라씨는 반대편 차선으로 차를 돌리고 액셀을 밟았다. 이때 바로 앞에 있던 차 두 대가 해일에 휩쓸려갔다. 필사적으로 50m 정도 후진해 겨우 시커먼 물폭탄을 피했다. 차가 서자 옆자리와 뒷자리에 앉은 두 딸부터 챙겨 안았다. 그날 밤은 휘발유를 아끼기 위해 난방도 켜놓지 않고 아이들과 차 안에서 밤을 새웠다.

다음날 목적지를 바꿔 바다와 더 멀리 떨어진 대피소로 갔다. 물자가 부족한 가운데서 오하라씨와 두 딸의 힘겨운 대피소 생활이 시작됐다. 그 중에서도 가장 고생한 건 생후 5개월 된 리아였다. 지진과 피신의 혼란 통에 젖병이 다 깨졌다. 스트레스 때문인지 모유도 나오질 않았다. 이온 음료에 끓인 물을 섞어 줘봤지만 리아는 도리질 치며 울기만 했다. 기저귀를 제때 갈아주지 못해 짓무른 엉덩이에 딱지가 앉았고, 딱지가 벌어지면 피가 흘렀다.

17일 게센누마시 근처에서 배달작업을 하던 남편이 해일에 쓸려 사망했다는 소식을 남편의 직장 상사에게서 들었지만 실감이 나지 않았다. 다음날 밤 아이들이 대피소에서 잠든 것을 확인하고 오하라씨는 영안실로 향했다. 관 속에 누운 벌거벗은 남자가 남편인 걸 확인하자 그제야 거짓말처럼 눈물이 솟구쳤다. 남편에게 깨끗한 옷이라도 입혀주기 위해 집으로 돌아갔다. 해일이 집을 부수지는 않았다.

집에 와서야 비로소 회사에서 돌려준 남편의 짐가방을 풀어봤다. 여성용 반지가 그 안에 들어 있었다. 오하라씨는 얼마 전 남편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가끔 나도 반지 같은 게 갖고 싶을 때가 있어요. 당신은 선물 주는 남자는 아닌 것 같네요." 화이트데이(14일)를 앞두고 남편이 준비한 마지막 선물. 그녀는 반지를 꼭 쥐고 다시 울었다.

오하라씨는 두 딸과 함께 여전히 대피소에서 살고 있다. 이곳에 얼마나 더 있어야 할 지 모른다. 다만 앞으로 닥쳐올 어려움을 혼자 이겨내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기저귀가 없어서 오물이 묻은 애들 옷은 그냥 바람에 말린다. 오하라씨는 가끔 주머니 속에 있는 반지를 매만지며 혼잣말을 한다. "이 아이들은 내가 꼭 잘 키울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