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음악과 함께 축포가 터지고, 하얀 꽃 종이가 눈처럼 쏟아져 내렸다. 2010~2011 프로농구 정규리그 마지막 날인 20일 부산 사직체육관엔 1만2693명이 들어왔다. 역대 정규리그 한 경기 최다 관중이었다.

잔칫날 분위기였다. 지난주 원주에서 창단 7년 만의 첫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 지었던 KT는 공식 시상식을 했다. 홈 팬들은 '한 시즌 최다승리' 기록까지 지켜볼 수 있었다. KT가 모비스를 80대65로 이기면서 시즌 41번째 승리(13패)를 거둔 것이다. KT는 2003~2004 시즌 동부, 2009~2010 시즌 KT·모비스가 올렸던 종전 한 시즌 최다승(40승) 기록을 갈아치웠다.

삼성전자 시절 선수들의 뒤치다꺼리를 도맡으며‘세계적인 주무’라 불렸던 전창진 KT 감독은 이제 한국 프로농구를 대표하는 명장이 됐다. 20일 부산 사직체육관에서 역대 정규리그 최다승(41승)을 기록한 KT 선수들이 전 감독을 헹가래치고 있다.

이날 경기를 앞두고 체육관 바깥쪽 벽엔 '평범한 사람들이 쓴 성공신화'라는 플래카드가 걸렸다. 스타 한 명 없는 KT의 정규리그 우승은 전창진 감독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신화였다.

전 감독의 농구 인생 자체가 드라마다. 그는 1986년 실업팀 삼성전자에서 선수로 데뷔했다가 1988년 발목 수술 후유증으로 일찍 선수생활을 접었다. 농구판을 떠나고 싶지 않아 선수들 뒤치다꺼리를 도맡아야 하는 주무를 직업으로 선택했다. '세계적인 주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1996년 구단 사무국 운영팀장으로 승진했다. 한국 농구가 프로화되는 전환기에 삼성 썬더스 창단을 주도한 사무국에서 홍보·마케팅 책임자로 일했다. 1997~1998 시즌 삼성 수비 코치로 다시 변신했다. 전창진 감독은 나래와 TG삼보(현 동부)의 코치를 거쳐 감독으로 승격했다. 일부에선 '주무 출신'이라며 수군댔지만 그는 특유의 친화력과 카리스마를 앞세워 명장 반열에 올랐다.

동부 사령탑이었던 2003~2004 시즌 정규리그 40승을 일궜고, 지난 시즌 KT에 부임하자마자 다시 40승을 달성했다. 지난 시즌엔 모비스와 승패(40승14패)와 상대 전적(3승3패)까지 같았는데, 골 득실에서 밀려 정규리그 우승을 내 줬다. 모비스가 승승장구하며 챔피언전 우승까지 차지하는 사이 KT는 4강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KT는 1년 만에 더 강해졌고 그 중심에 전 감독이 있었다. 팀을 옮겨가며 우승을 일궈낸 지도자는 지금까지 전 감독이 유일하다.

전 감독의 감회는 남다르다. 그는 "지난 시즌 첫 훈련을 하면서 선수들에게 기본적인 걸 시켜봤는데, 아무도 못하더라"라며 "구단 직원에게 '다시 (동부로) 돌아가야겠다'고 농담했다"고 회상했다.

전 감독이 KT로 오면서 구상하고 정착시킨 팀플레이는 '무빙 오펜스(Moving Offense)'. 선수 다섯 명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다양한 공격 루트를 찾는 작전이다. 개인 기량이 뛰어난 해결사가 없는 KT로선 무빙 오펜스가 살 길이었다.

전 감독은 "조동현·조성민을 중심으로 잘해주고 있다"면서 "송영진·박상오가 좀 지쳐 있지만 플레이오프까지 쉬면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작 휴식이 필요한 사람은 전 감독이다. 그는 불면증 탓에 매일 새벽녘에야 잠을 이룬다. 20일도 밤새 경기 비디오테이프 세 개를 다 보고 나서 오전 5시쯤 눈을 붙였다고 한다. 한 달 넘게 잔기침에 시달리고, 몸에 열이 나면서 식은땀을 자주 흘린다는 얘기도 했다.

이런 전 감독이지만 쉴 시간이 없다. '봄 농구', 즉 포스트 시즌을 준비하는 일이 남았기 때문이다. 그는 "선수들이 자신감을 얻으면서 이기는 방법을 알 게 된 것 같다"며 "올해는 무조건 챔피언전 우승을 해봐야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