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후쿠시마의 원자력발전소 사고 수습이 장기화하면서 방사성 물질의 누출이 시작됐다. 이 원전에서는 지난 11일 규모 9의 강진 후 세 차례에 걸쳐 밀려온 해일이 방벽(防壁)을 훌쩍 뛰어넘어 모든 전원을 마비시켰다. 시간이 흐르면서 원자로 냉각수가 증발하고 핵연료가 상당 부분 녹아내려서 이제는 일본 열도가 방사능 오염을 우려해야 할 사태로 번지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原電)을 소유한 도쿄전력주식회사가 재산에 미칠 피해를 우려하여 바닷물의 주입을 주저하는 사이에 후쿠시마 1·2·3호기 모두에서 핵연료가 과열되어 대량의 수소를 방출하고 폭발을 일으켜 사태는 급속히 악화됐다. 만약 초기부터 원자로 내에 냉각수가 부족할 경우 이런 사태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확신을 가졌다면, 그래서 원전의 부식을 각오하고 남아있는 유일한 냉각수단인 바닷물을 넣기 시작했다면 핵연료 손상이나 방사성 물질 누출 없이 순조로이 수습됐을 것이다. 그러나 사고 발생 후 며칠 동안 원전 대책지휘부는 전문성과 순발력을 보이지 못한 채 원전의 대규모 손상과 방사성 물질 방출을 허용하고 말았다.
이제 일본은 체르노빌 이래 최대 원자력발전소 사고를 예방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사용 후 핵연료의 위험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거센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주민대피가 장기화되면서 일본 원전 산업도 깊은 구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처럼 국가적 위기 사태에 전문성과 통솔력이 보이지 않아 놀랍다. 하지만 그 원인은 이미 여러 차례 지적되어 온 일본 원자력 안전규제의 구조적 문제에서 찾을 수 있다.
체르노빌 사고 후 지난 20년간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후쿠시마 원전과 같은 대재앙을 막기 위한 대책을 다각도로 연구했다. 그 결론은 일체의 원자력 진흥활동에서 안전규제를 독립시키라는 것이었다. 원자력 진흥활동에는 원전 건설 및 방사성폐기물 관리는 물론 관련 개발사업도 포함된다. 이러한 사업에는 많은 예산이 소요되는 만큼 서로 이해가 얽히기 마련이다. 따라서 같은 부처가 원전 운영과 안전규제를 모두 관장하고 있으면 그 사이의 연결고리로 인하여 규제활동에 허점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IAEA는 경고한 것이다.
세계 선진 원자력 국가 중에서 유독 일본과 우리나라만이 IAEA의 권고를 따르지 않고 있다. 일본은 이로 인해 유난히 대형 원자력 사고가 많다. 재처리 연구시설의 사고에서 이번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이르기까지 굵직한 사고들이 이어져 왔다. 원자력 안전규제와 진흥이 얽힌 상태에서 규제와 점검이 형식을 중시하고 전문성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미국과 프랑스의 경우 안전규제 기관을 대통령 직속으로 독립시키고 최악 상황에 대한 전문성과 현장 위기관리 능력을 중시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원자력 진흥과 안전규제가 서로 얽혀 있으며, 최근 여러 곳에서 경보가 울리고 있다. 에너지 안보를 위하여 원전의 이용이 불가피한 우리나라에서 후쿠시마와 같은 대재앙이 일어나는 것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사법부를 행정부에서 독립시켜야 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원자력 안전규제를 진흥에서 완전히 독립시키고, 전문성과 현실 위기관리 능력을 최우선하는 엄정한 규제기관으로 바로 세우는 일이 매우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