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리타 다다카쓰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가족은 모두 무사합니다. 080-6684-○○○○.' '아라하마 신1초메에 사는 엔도 다카시, 3층에 있습니다.'

14일 일본 센다이(仙臺)시 시치고(七鄕)초등학교 1층 연락판엔 가족이나 지인을 찾는다는 메모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학교로 들어가는 현관 입구에 커다랗게 대자보를 붙인 가족도 있었다. '언론 관계자 여러분, 아래 명단에 있는 사람들의 안부를 전하고 싶습니다. 와카바야시구(若林區) 아라하마(荒濱)에 사는 아베 요이치, 오노 유키….'

이 학교는 지진이 발생한 뒤 아라하마 주민을 위한 대피소로 쓰이고 있다. 시치고와 긴 제방 하나를 사이에 둔 아라하마는 이번 지진과 쓰나미로 큰 피해를 입었다. 200~300구의 시신이 발견된 곳이라고 보도된 센다이 해변이 바로 아라하마를 비롯한 와카바야시구의 태평양 연안이다. 이날까지 어림잡아 주택 2700채가 쓰나미에 휩쓸려 갔다.

간신히 화를 면한 사람들도 통신이 끊긴 상태에서 이리저리 대피소로 거처를 옮기면서 연락이 닿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2~3일씩 가족과 지인의 소식을 듣지 못한 이들은 초등학교 1~4층 복도와 각 교실 문에 나붙은 입소자 명단에 희망을 걸고 있었다.

이날 센다이 시내에서 이 학교에 온 무라카미(村上·42)씨는 "아라하마에 사는 친척이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 대피소를 돌아다니고 있다"며 "살아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어디서 지내는지, 도와줄 것은 없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학교에서 만난 사람들은 엄청난 절망과 불안 속에서도 작은 희망을 찾고 있었다. 가족과 함께 대피한 사토(佐藤)씨는 담담하게 "예전의 마을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은 모든 일이 불안하지만 다들 마음을 모으면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사토씨는 '모두의 협력'이란 표현을 여러 번 반복했다. '모두의 협력'은 그들에게 아픔을 겪고도 삶을 이어갈 힘을 주는 마법의 언어 같았다.

학교 운동장엔 자원봉사자와 피해 주민들이 함께 모은 낡은 목재 더미들이 쌓여 있고, 그 곁에는 불길에 검게 그을린 솥이 대여섯 개 걸려 있다. 남자들이 불을 피우면 여자들은 센다이시가 보내온 식재료를 다듬어 하루 식사를 마련했다.

오후 2시 40분쯤 "모포가 도착했다. 1층에서 나눠 드리겠다"는 안내 방송이 학교 안에 울려 퍼지자 1~4층에 흩어져 있던 이들이 한 사람씩 내려와 줄을 섰다. 옷가지를 나눠주는 창고 앞에서도 주민들은 자신에게 맞는 옷 한두 벌만 차분히 집어들었다. 대피소에서 생활하는 엔도(遠藤)씨는 "부족한 대로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나누면 이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절망에 빠진 이들의 손을 잡아 일으킬 만한 희망적인 소식들도 들려왔다. 현지 언론이 전하는, 사투 끝에 살아난 이들의 사연들이다. 이와테(巖手)현 오쓰치초(大槌町)에선 해일에 파묻힌 집 안에 갇혔던 75세 여성이 지진 발생 92시간 만에 구출됐다.

이와테현 리쿠젠타카타(陸前高田)시에 사는 모녀는 지난 14일 대피소에서 참사 70시간 만에 감격의 상봉을 했다. 어머니는 지난 11일 수퍼마켓에서 쇼핑을 하다 건물이 요동치자 곧 밖으로 뛰쳐나갔고, 고지대로 몸을 피한 뒤 귀가했으나 집은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딸은 쓰나미가 덮칠 당시 의식을 잃었으나 대형 트럭에 걸려 구조됐다. 어머니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대피소 내 안내 방송을 듣고 달려가 눈물의 포옹을 했다. 아직 연락이 닿지 않는 남편에 대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고 현지 신문은 전했다.

마을 전체가 폐허가 된 미야기(宮城)현 이시노마키(石卷)에서는 15일 지진 발생 96시간 만에 부서진 건물 안에서 25세 남성 1명이 구조됐다. 발을 다쳐 혼자 힘으론 빠져나올 수 없었지만, 구조대원들이 인기척을 듣고 구해낸 것이다. 소방대원은 "이만한 지진에, 이 정도 시간이 흘러 구조된 것은 기적이다"고 했다. 그런 기적과 기적을 만든 인간 승리를 이곳에선 갈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