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6시 30분 이바라키 나메가타(行方)시는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교통 신호등조차 꺼져 있었다.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자동차들의 헤드라이트만 보일 뿐이었다. 음식점, 수퍼 등 상점들이 문을 닫았고 거리는 유령도시처럼 인적이 끊겼다. 빌딩의 엘리베이터, 병원, 공장의 기계도 올스톱됐다. 주민들은 집안에서 비상랜턴을 켜고 전기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지진 직후에도 멀쩡하게 전기가 들어왔던 지역이다. 세계 경제력 3위의 일본이 갑자기 100년 전으로 되돌아간 듯한 착각이 든다는 주민들도 있었다.
지역별로 나눠 단전시키는 일본 정부의 '계획 정전(停電)'이 처음 실시됐다. 원전 사고 등으로 인한 전력 부족 때문에 계획 정전을 하지 않으면 도쿄권 전체가 정전사태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도쿄 전체의 기능 마비를 막기 위해 일부 지역을 희생하는 비상 조치이다. 일종의 전기배급제인 셈이다.
계획 정전은 예외가 없다. 도쿄 시민의 발인 전철은 물론 학교, 병원, 법원, 공장 등 모든 시설에 적용된다. 정전으로 병원 인공호흡기 작동이 중단되는 것 아니냐, 엘리베이터에 갇히게 되는 것은 아닌가, 범죄자가 날뛰지는 않을까 하는 등의 불안과 공포가 도쿄 시민들에게 몰려들고 있다. 정전사태의 파문은 이미 퍼지기 시작했다. 지하철은 운행 편수를 줄이는 바람에 콩나물시루를 방불케 했다. 휴교를 했거나 계획하고 있는 학교도 1000여곳이나 된다. 공정 특성상 24시간 가동해야 하는 공장들은 정상화될 때까지 조업을 중단하기로 했다.
더 큰 문제는 계획 정전이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데 있다. 후쿠시마(福島) 원전 등이 복구 불능 상태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도쿄전력은 "화력발전소 복구가 끝나는 오는 4월이면 계획 정전을 일단 중지하겠다"면서도 "에어컨 수요와 난방 전력 수요가 폭증하는 여름과 겨울철에 다시 계획 정전을 할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계획 정전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자발적인 절전이다. 도쿄전력측은 "전기 사용량을 분석해 가며 여유 전력이 있으면 정전을 실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5~7시 정전도 당초 규모보다 크게 축소됐다. 정부는 렌호(蓮舫) 행정쇄신장관을 '절전 담당' 장관으로 겸직시키고 국민들에게는 절전을 호소하고 있다.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눈물까지 보이면서 "전후 최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민들이 단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일본 국민과 기업들은 자발적으로 절전운동에 들어갔다. 이날 밤 도쿄의 밤은 자발적 정전으로 평소보다 훨씬 어두웠다. 백화점과 쇼핑센터도 영업시간을 줄이거나 아예 휴업하고 있다. 상점들도 일찍 문을 닫아 도쿄 도심은 밤이 되자 인적이 드물었다.
의약회사 다이이치산교(第一三共)는 본사 및 연구원에게 자택근무를 지시했다. JFE스틸도 절전을 위해 생산량을 줄이기로 하는 등 기업이 국가적 위기를 맞아 절전에 동참하고 있다. 시세이도(資生堂)는 생산 차질이 장기화될 것을 우려해 아예 도쿄권에서 생산 라인을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아사히(朝日)신문이 보도했다. 계획 정전이 계속될 경우 아시아의 첨단 중심도시라는 도쿄의 명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