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라고 해도 밭 한가운데 늠름하게 서 있기만 한 순하디순한 녀석인디, 그렇게 허망하게 죽어버렸당께."
지난 8일 전남 강진군 군동면 명암마을 신옥진(69)·이애심(65)씨 부부는 암소 '황순이'의 장례식을 치렀다. 황순이의 올해 나이는 31살. 사람 나이로 치면 환갑을 훌쩍 넘은 소였다. 황순이는 신씨 부부와 꼬박 25년을 동고동락(同苦同樂)한 가족이었다. 신씨는 "우리 막내(33)보다 황순이가 더 어리니깐 우리 집의 진짜 '막둥이'는 황순이였다"고 말했다.
신씨 부부는 1985년 강진 우시장에서 43만원을 주고 6살 암소를 구입했다. 워낙 순하고 말을 잘 따라서 '황순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고 한다.
황순이는 신씨 부부의 재산목록 1호였다. 지금껏 15번 출산해 암수 8마리씩 16마리 새끼를 낳았다. 신씨 부부는 그 새끼들을 팔아 4남매 학비 뒷바라지를 했다. 황순이가 쟁기질한 20마지기 밭에서 자란 감자며 콩·마늘·시금치·배추 등을 팔아 자식들을 거뜬히 키웠다. 첫째딸(42)을 빼고는 장남(40)·차남(39)·막내딸(33)이 모두 황순이가 낳아준 새끼 소들 덕에 대학을 갔다고 한다. 최근 4남매는 모두 결혼을 했고, 장남은 호주 영주권을 얻어 생활하고 있다.
부인 이씨는 "황순이가 1년이면 수천만원어치의 일을 해내 자식들을 걱정 없이 돌봤다"고 말했다. 신씨는 "밭을 둘러싼 주위 논에 모가 있으면 소말고는 걸어 들어갈 수 없어 황순이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며 "항상 아무런 불평 없이 알아서 (우리)밭을 찾아가는 영특한 소였고, (우리)자식들을 먹여살린 보배였다"고 말했다.
소의 수명은 보통 20살. 이에 비하면 황순이는 장수한 셈이다. 하지만 3년 전부터 먹어도 살이 빠지고, 뼈가 불거지고, 털이 거칠어지고, 발도 절기 시작하는 등 노화가 급격해졌다. 최근에는 구제역 예방 접종을 두 차례 맞은 뒤 기력이 급격하게 쇠약해졌다고 한다. 그러다 지난 7일 끝내 숨을 거뒀다.
이씨는 "앞으로 3년은 거뜬히 밭일을 할 소였는데, 구제역 주사를 두 번 맞더니 시름시름 앓았다"며 "동물병원에서 좋다는 약을 먹여봤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말했다.
황순이의 뒤는 2년 전 가족이 된 10살 성순이가 잇는다. 노부부는 아무 소나 쟁기질 하는 게 아니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성순이가 쟁기질이 서툴러 걱정이야. 올해는 고추·깨·콩을 심는 여름 농사를 망칠 것 같아. 그래도 성순이를 가족처럼 사랑해주면 언제가 일솜씨가 늘겠지…"
부부는 집 옆 볕이 바로 드는 공터에 황순이가 잠든 얕은 무덤을 만들고, 좋아하던 꽃들을 놓아주었다. 앞으로 매년 제사도 지내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