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관들에게 가장 중요한 기본 자질 중의 하나는 주재국의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주재국의 문화에 대한 관심과 소양 역시 매우 중요하다. 최근 외교통상부가 유럽연합과 자유무역협정 조약 번역에서 야기되고 있는 '오역' 파동은 치명적인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국제관계에서 그처럼 중요한 외교문서를 번역하는데 오역은 물론 탈자와 오타 및 불필요한 자구의 삽입을 비롯해서 심지어 숫자까지 틀렸다고 하니 그 허술함이 가히 놀랄 만하다. 이는 세심하게 끝까지 책임져야 할 외교문서 관리가 얼마나 소홀한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 보면서 두 사람의 서양 외교관을 생각해 본다. 한 사람은 그레고리 헨더슨(Gregory Henderson)으로 1963년까지 우리나라에 7년간 미국의 문정관과 정무참사관으로 머물렀다.
그는 1970년대 독일에서 신라 토기에 대해 강연한 뒤, 내 이름을 묻더니 유창한 한국어로 "평산 신씨이시군요. 나는 청주 한(韓)씨의 한대선(그의 한국 이름)입니다"라고 해서 놀랐다. 한국어는 물론 우리나라의 성씨와 족보에 대해서 높은 식견을 드러냈다. 그는 신라와 고려 및 조선시대의 도자기와 불화, 서적 등을 많이 수집해 미국으로 우리 문화재를 반출하기도 했다.
다른 한 사람은 1980년대 한국에서 그의 마지막 근무를 마친 독일 문정관 발터 라이퍼(Walter Leifer)이다. 그는 구한말의 외교 고문을 지낸 독일인 묄렌도르프(한국 이름 목인덕·穆麟德)에 대해 커다란 관심을 갖고 열정적으로 탐구했다. 라이퍼는 더 이상 그에 대한 연구가 필요 없을 정도로 한국학자들의 광범한 도움을 얻어 묄렌도르프의 생애와 업적을 종합 정리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미국 외교관 헨더슨의 한국 언어와 문화에 대한 뛰어난 이해와 독일 외교관 라이퍼의 선배 외교관에 대한 열정적 연구는 오늘날 우리 외교관들에게 주는 시사(示唆)가 적지 않다. 하는 일에 기초를 착실하게 다지고 나서 주어진 업무에 최선을 다하는 우리 외교관들의 자세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이런 자세야말로 우리가 21세기를 열어갈 중요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