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대물<91> 메모 필기

함께 살면서도 6년을 넘게 메모지를 통해서만 대화를 나눠온 노부부에게 대법원도 이혼을 허락했다.

대법원 2부(주심 김지형 대법관)는 A(77·여)씨가 B(81)씨를 상대로 낸 이혼 등 청구소송에서 "두 사람은 이혼하고 남편은 아내에게 재산분할로 2억9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2일 밝혔다.

1969년 결혼한 A씨와 B씨는 성격차이로 결혼생활 내내 불화를 겪었다. 사소한 일에도 사사건건 부딪히면서 관계가 악화됐고, 급기야 이들 부부는 2003년부터 서로 메모지를 통해서만 의사소통을 하기에 이르렀다.

B씨가 메모지로 어떤 요구를 하면 A씨가 답을 하는 식이었고, 남편은 메모를 통해 모든 집안일에 간섭했다. '두부는 비싸니 많이 넣어 찌개식으로 하지 말고 각종 찌개에 3~4점씩만 양념으로 사용할 것'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B씨는 심지어 '정장 스봉이 거실에서 나왔다고 했는데, 그 진실한 내용을 소명하라고 했는데 어찌 지금까지 묵묵부답인지? 명일까지 소명할 것', '앞으로 16:00 이후에 귀가시는 절대로 현관 차단할 것이다'라는 메모도 건넸다.

그러던 중 2008년 8월 깻잎 반찬을 상에 올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멱살을 잡혀 병원 신세까지 져야했던 A씨는 결국 집을 뛰쳐나갔다가 열쇠수리공을 대동해 몰래 집에 들어가 챙긴 각종 서류로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1심은 "이들의 혼인관계는 더 이상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됐다"며 "두 사람은 이혼하고 B씨는 A씨에게 재산분할로 6억42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2심도 이혼을 허락하면서, 재산분할액만 새로 계산해 판결했다.

대법원 역시 1·2심과 마찬가지로 이혼을 허락하는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을 내렸다. 심리불속행은 상고 이유가 법이 규정한 사유(위헌, 위법 주장 등)에 포함되지 않으면 심리 없이 상고를 기각할 수 있는 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