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는 '가락지의 반쪽'이란 의미죠. 결혼하기 전까지 한 개짜리 반지를 끼다가 결혼하면 두 개짜리 가락지를 끼는데 이는 우리의 반지 문화에 서로 성씨가 다른 남녀가 만나 하나로 결합한다는 뜻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반지 문화에는 각기 그 나라의 문화와 예술성이 담겨져 있는데 예를 들어 사람들이 결혼반지를 왼손 넷째 손가락에 끼우는데, 왼손은 오른손에 비해 정신적으로 약하고 순종적이라는 나름대로의 종속적 의미를 부여한 데서 나왔기 때문이란 것이죠. 그리스인들도 넷째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고 있는데 이들은 넷째 손가락이 심장과 바로 연결되며 이곳으로는 신경 혈이 흐르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반지 한 개에도 소중한 의미들이 담겨져 있고 그 안에는 무궁무진한 설화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우리 민족의 소중한 문화가 한낱 흘러간 이야기로 묵살되고 있어 안타깝다는 그. 평생토록 갈고 닦은 기술과 기·예의 흔적들이 서서히 지워지고 있음이 너무나 안쓰럽다는 은장(銀匠) 황갑주(黃甲周)를 만났다.
"요즘 전통공예 관련 전시장이나 공모전, 한복집에 가보면 심각할 정도입니다. 예를 들어 한복 정장의 필수품인 순은(純銀) 적삼 단추는 복숭아형이며 배자 단추는 직사각형, 타원형에 국화문(紋)과 매화문을 새긴 금속조각이어야 하는데 국적불명의 장신구를 달거나 아예 매듭 고리를 해서 실용성만 내세우니…."
황갑주(黃甲周)는 1939년 전남 순천에서 태어나 15세인 1954년 아버지 손에 이끌려 순천 시내 금은방 전문점 주인 조중선, 조채호에게 맡겨진 후 금은 세공, 성형 등의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자그마치 57년 한 길을 걸었다.
1950년대 초엔 금보다는 은을 소재로 한 신변 장신구들을 많이 활용했으며 주로 노리개, 적삼, 배자, 마고자 단추는 물론 분합·향합·향집·표주박·은침과 통 등을 제작하였는데 황갑주는 "일거리가 너무 많이 밀려들어와 손가락 지문이 닳아 없어질 정도였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세공 기술이 분업화되어 있지 않았던 당시는 장인들이 은판을 직접 두드려서 잘라내고 금형, 조각은 물론 광내기까지 모두 혼자서 처리해야 했다. 그는 남보다 더 열심히 일하며 참고 견뎌내 기술을 배웠다. 일을 시작한 지 3~4년 되던 해부터는 인근의 구례·벌교지역의 금은방까지 '출장'을 다니며 기술 지도와 제작을 거들 정도로 일대에서 명성을 얻었다.
20세가 된 1959년, 청운의 꿈을 품고 서울에 상경한 황갑주는 동화백화점(現 신세계백화점 본점) 금은부 1호점에 취업해 조진옥 선생으로부터 디자인과 다양한 금속을 다루는 기술을 배웠으며 한국은행 건너편에서 백금방을 운영하던 김기철 선생으로부터는 백금과 보석 등 귀금속 세공기술까지 전수받게 되었다. 그가 25세 되던 해에 스승으로부터 금은방을 물려받아 '보영사'란 상호를 내걸고 직접 운영을 하게 되었는데, 스승은 성실하고 기술이 뛰어난 황갑주를 높이 평가하여 사업체를 그대로 넘겨주기까지 한 것이다.
종로3가에서 창덕궁 방향으로 향하다 첫 번째 사거리에서 우측을 향해 바라보면 종묘 돌담길이 보인다. 이 부근에서 종로 큰 거리까지 온통 금은방들이 자리 잡고 있다. 차도는 물론 좁은 골목 사이사이마다 빼곡히 들어앉은 금은방들 사이에 촌스러운 시골풍의 '황갑주 은(銀)공방' 이라고 쓴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여닫이문을 열고 들어서니 3~4명이 움직일 수 있는 매장에 각종 금·은 세공품들과 수공구들이 가득 차 있다. 처음 이곳을 찾는 이라면 누구나 '이처럼 열악한 곳에서도 저토록 아름다운 귀금속들이 탄생되는구나' 하고 놀랄 수밖에 없다.
은장(銀匠) 황갑주의 전성기는 1970년대였다. 이 시기 그는 본점에 기능공 23명, 명동분점에 22명, 경리·관리자까지 모두 50여명의 대식구를 거느린 전국 최대 규모의 금·은 전문방을 운영했고, '귀금속 보석기술인회' '서울 귀금속 기술인회' '(재)한국귀금속보석기술협회' '한국귀금속장맥회' '한국귀금속장인협회'등의 회장·고문직에 위촉됐다. 1965년엔 주요무형문화재 조각장 김철주의 스승이자 부친인 김정섭으로부터 전통조각 기법을 전수받았고, 일중 김충현, 벽산 김창섭, 남주 홍신표 등 서예가들로부터 배워 이를 벽걸이나 금·은 세공품에 수놓으며 전통을 바탕으로 한 신상품을 개발하기도 했다. 그동안 그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백제 무열왕릉 출토 은탁·은잔·용잠·사리함·표주박 등의 재현품들은 현재 익산 보석박물관에 영구 보존돼 있다.
황갑주로부터 기술을 사사 한 황영천·송기종·박병천을 비롯하여 200여명의 장인들이 전국의 금·은·보석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2009년 11월 '황갑주 장인 귀금속 입문 제55주년 전통 은(銀)공예전' 을 열기도 했다.
그는 그동안 제작한 각종 금·은세공품들 300여점 중에서 엄선한 작품을 공공기관에 기증·전시케 했다. 그는 은장 분야의 스승으로서 "전시된 물품을 대한민국 금·은세공 분야 장인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했다. 동시에 올해 문화재청에서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실사 종목에 은장이 선정되자 자신도 도전해보겠다며 젊은 투지를 불사르기도 했다. 은세공품에 조각을 하고 있는 그의 팔뚝엔 세공품에 조각된 '조금술'(점선조·세립조·양각·상감·투각)보다도 더 강하면서도 잔잔한 주름살들이 마치 살아 움직이고 있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