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밤 외국인 전용 카지노 '세븐럭 밀레미엄'이 있는 서울 중구 특급 호텔 '밀레니엄 서울 힐튼'의 뒤편 주차장 출입구. 낡은 갈색 면바지와 솜이 두툼하게 들어간 검은색 점퍼 차림의 중국동포(조선족) 박모(51)씨가 익숙한 걸음으로 카지노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7년 전 한국에 온 그는 서울 구로동의 건설현장에서 일당 10만원을 받고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지만 이 호텔 카지노의 단골손님이다.
박씨는 "처음엔 호텔 카지노에 오면 공짜로 밥도 주고 음료수도 준다고 해 구경삼아 왔다가 지금은 일요일마다 카지노에 오지 않으면 미칠 지경"이라며 "3년 동안 공사판을 떠돌며 번 1억원을 슬롯머신에 몽땅 바쳤다"고 말했다.
이날 밤 박씨와 비슷한 차림의 외국인 근로자들이 10분에 1~2명꼴로 카지노에 들어섰다. 100만~200만원의 월급을 받고 공장과 건설현장 등에서 일하는 중국 동포와 동남아 등에서 온 외국인 근로자들이다. 서울 시내 호텔들의 카지노는 '외국인 전용'이라 한국인은 출입할 수 없지만 이들은 외국인이라 아무 문제가 없다.
태국에서 온 외국인 근로자 차이(30)씨는 자정을 넘겨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 카지노에서 나왔다. "지난주 잃은 돈을 만회하러 왔는데 오늘도 100만원을 잃었다"며 "한 달 월급을 몽땅 날렸으니 고향에 보내 줄 돈도, 내가 먹고 살 돈도 없다"고 했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카지노는 지하철 서울역에서 걸어서 5분 이내 거리에 있는 힐튼호텔 카지노다. 이곳에서 만난 외국인 근로자들은 "평일엔 200명, 공휴일엔 300명 정도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카지노에서 도박한다"고 했다. 이 카지노의 하루 평균 이용객은 평일 2000명, 주말 2300명가량이다. 전체 손님의 10%정도가 외국인 근로자인 셈이다.
외국인 근로자들의 카지노 출입이 늘다보니 이들을 상대로 전문적으로 노름 밑천을 빌려주는 사채업자까지 등장했다. 자동차나 귀금속을 담보로 엄청난 고금리로 200만~300만원씩 빌려주고 있다.
카지노에서 돈을 탕진해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외국인 근로자들도 드물지 않다. 3년 전 한국에 들어와 페인트공으로 일하는 중국 동포 유모(45)씨는 작년 6월 카지노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6개월 만에 2년간 일해 번 2000만원을 모두 날렸다. 유씨는 "중국 옌지(延吉)로 돌아갈 비행기표를 살 돈마저 카지노에서 날려 돌아갈 수도 없다"며 "나 같은 사람이 지금도 카지노에 쫙 깔렸다"고 말했다.
이처럼 카지노를 출입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은 한국에서 일해 번 돈을 한순간에 날리고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불법 체류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들의 카지노 출입은 방치되고 있다. 실태를 파악하는 정부기관도 없다.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사무처장 이영 신부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카지노 출입을 통해 불법 체류자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도록 정부가 관련 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