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밤 대구광역시 엑스코(EXCO) 5층 컨벤션홀. 지난해 말부터 한국 대중문화의 화두로 떠오른 '세시봉(C'est Si Bon·불어로 아주 좋다는 뜻으로 1960~70년대 서울 무교동에 있었던 유명한 음악 감상실) 콘서트'를 보기 위해 관객 2700여명이 모였다.
관객은 세시봉 멤버 송창식(64)·윤형주(64)·김세환(63)과 동년배인 중·장년층뿐만이 아니었다. 이들의 손자·손녀, 아들·딸뻘인 20·30대 청년층 관객도 상당수 있었다. 이들은 '웨딩 케이크' '하얀 손수건'처럼 낯설지만 포근한 옛 노래에 파묻혀 열정적으로 야광봉을 흔들며 환호했다. 이들 덕분에 공연장 분위기는 여느 아이돌그룹 콘서트장 못지않게 뜨겁게 달아올랐다. 세시봉 콘서트가 세대 간 소통과 화합의 통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 쇼핑몰 '인터파크'에 따르면 이날 표를 산 사람 가운데 53.6%가 20·30대였다. 곧 벌어질 수원이나 의정부 공연의 예매 상황도 비슷하다. 이들 중 일부는 부모를 대신해 표를 산 탓인지 실제 관객 중 30대 이하는 전체의 20% 정도였다. 청년층 관객들은 커플끼리 또는 동호회 멤버들과 공연장을 찾았다.
이날 젊은 관객들은 "공장에서 찍어낸 것 같은 요즘 대중음악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차에 멤버 모두 라이브 실력이 뛰어나고 노래도 멜로디가 살아있는 세시봉 음악은 신선한 충격"이라고 했다. 강자영(30)씨는 "선율과 화음이 아름다워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여자친구와 함께 온 정준규(28)씨는 "TV에서 세시봉 콘서트를 본 뒤 여자친구가 통기타를 사 나와 함께 연습하고 있다"고 했다.
조상우(22)·박예현(23) 커플은 "슬프면서도 예쁜 음악도 좋았지만 멤버들 간의 인간적 배려와 특별한 우정에 더욱 마음이 갔다"고 했다. "자기가 쓴 곡의 히트를 예상하고도 친구가 달라고 하면 양보하는, 요즘에는 상상도 못할 세시봉의 우정"(윤형주)에 젊은층이 감동하고 있다는 얘기다. 딸과 함께 온 김필룡(60)씨는 "TV로 세시봉 콘서트를 보면서 딸과 옛날이야기를 많이 하게 됐다. 모녀간 세대차가 좁혀지고 사이가 더욱 좋아졌다"고 했다. 세시봉이 가정 내 부모·자식 간 이해의 가교 역할까지 하고 있는 셈이다.
세시봉은 대중음악계 신·구 세대의 정서적 소통과 공감까지 끌어내고 있다. 인기 아이돌그룹 빅뱅의 리더 지드래곤은 4일 기자회견에서 "옛일을 추억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 세시봉 선배님 음악의 장점이며 그분들이야말로 진정한 뮤지션이다. 저희 세대가 이런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것 자체가 행운"이라고 했다.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는 "요즘 젊은이들은 개인주의적이고 개성을 중시하는 듯하지만 다른 한편 자신들을 하나로 묶어줄 정서를 갈구하고 있다"며 "세시봉이 그 해답으로 떠오른 셈"이라고 했다. 이화여대 사회학과 최샛별 교수는 "60~70년대 대안(代案) 문화를 만들어냈던 혁신적 음악인들이 요즘 상업적 문화와는 다른 음악과 우정을 보여주니 젊은이들이 부모 세대까지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됐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