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7년 7월 전주우체국 소속 이시중은 우편배달을 나갔다. 마침 홍수로 냇물이 불어 건널 수 없자 편지를 돌멩이에 매달아 건너편 동네사람에게 던졌다. 돌멩이는 냇물을 건넜으나 편지는 물속에 빠졌다. 이시중은 편지를 건지려고 탁류에 뛰어들었다가 익사했다. 갑신정변 현장인 서울 우정총국 터 마당엔 '고 전주우편국 집배인 이시중 순직비'가 서 있다. 그의 시신이 걸렸던 바위를 옮겨다 세웠기에 거친 그대로 길쭉하다.

▶꽃샘추위가 매섭던 그제 남인천우체국 김영길씨가 고층아파트 계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오른쪽 장갑을 입에 문 채 오른손엔 볼펜을, 왼손엔 '부재중 방문' 쪽지를 들고 있었다. 오후 3시쯤 소포상자 3개를 들고 엘리베이터에 탄 그는 16층에서 내리는 모습을 끝으로 CCTV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18시간 만인 이튿날 아침 쓸쓸한 주검으로 동료 눈에 띄었다. 계단에서 구른 듯 뒷머리엔 피가 흥건했고 눈을 감지 못한 상태였다.

▶우리나라엔 비정규직을 포함해 1만5300명의 집배원이 있다. 한 달 평균 197만원을 받으며 택배 포함해 한 해 50억건을 배달한다. 시골에선 한 사람이 하루 1000통 안팎을, 대도시에서는 1700통쯤 나른다. 거꾸로 수신자 입장에선 보통 한 사람이 연간 100여통, 한 집은 300여통을 받는다. 대한민국 모든 가정에 하루 한 번쯤은 집배원 발길이 닿는 셈이다.

▶집배원은 개화기에 '체전부(遞傳夫)' '체대감(遞大監)'으로 불린 이래 130년 가까이 우리의 아날로그적 삶과 밀착해 있었다. 교통사고 환자를 구하고, 물웅덩이에 빠진 어린이를 구해 올리고, 화재를 맨 먼저 신고하고, 강도를 격투 끝에 붙잡는다. 몇 해 전엔 첫 집배원 박사도 나왔다. 2007년 프랑스 대선에선 집배원 출신 올리비에 브장스노가 150만표를 얻어 5위를 했다.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에 묘사된 낭만적 모습은 한 단면일 뿐이다. 우리나라 집배원은 한 해 2~3명이 순직하고 250여명이 부상을 당하는데, 십중팔구 교통사고 탓이다. 사나운 개도 문제고, 눈을 치우지 않은 집앞에서도 자주 쓰러진다. 1967년에 제정됐던 '집배원의 날'은 불과 6년 만에 '체신의 날', 지금 '정보통신의 날'에 흡수되고 없다. 순직 사고가 날 때마다 나오는 집배원 처우개선 이야기가 민망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