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권택이 이달 자신의 101번째 영화 '달빛 길어올리기'를 개봉한다. 그는 '101번째 작품이 아니라 100번의 습작을 끝내고 새롭게 데뷔하는 신인감독의 첫 작품으로 봐달라'고 했다. 임 감독만이 아니다. 그의 아내 채령(본명 채혜숙·60)에게 '달빛 길어올리기'는 또 다른 의미의 '데뷔작'이다. '오란씨 1대 모델'로 70년대 촉망받는 배우였으나 17세 연상의 임 감독과 결혼하면서 배우로서의 꿈을 접은 여인. 이후 32년간 평범한 주부로 두 아들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만 해온 그녀가 이번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한다.
영화 때문에 그녀를 만난 것은 아니다. 한국 영화계의 '거장'으로 불리는 남자의 아내로 산다는 것은 어떤 걸까, 궁금했다. 나이 들어서도 미모와 기품을 잃지 않는 비결은 더욱 궁금했다. 칸·베를린 같은 유명 영화제에서 '임(Lim)이 동반한 묘령의 여인'이라 불리며 뭇 여배우들에 '굴욕'을 안겨줬다는 그녀다. '내조의 여왕'이란 말도 들려왔다. 감독의 절친한 지인들은 "임권택의 최대 히트작은 채령"이라고 단언했다.
■"컴백? 배우 안 하길 참 잘했지"
―32년 만의 '컴백'인가?
"부끄러워 대답도 못하겠다. 촬영 전날 스태프들이 몰려와서는 무조건 사모님이 도와주셔야 한다고 하더라. 현장에 무슨 일 생겼나 싶어 가슴이 철렁한데, 공방 주인 역 맡은 배우가 못 오게 됐으니 나더러 해달라는 거였다. 감독(임권택) 수발 위해 따라온 터라 뭘 준비한 게 있어야지. 나도 여잔데, 이삼일 전이라도 말해줬으면 마사지라도 한번 받고 왔을 것 아닌가."
―사전에 짜여진 각본이란 얘기가 있다.
"진실이야 모르지. 무조건 못한다 버티는데, 감독이 들어오더니 '난 아무 소리 안 했어' 하고 시치미를 떼더라. 밤새 고민하다 감독이 몸 아파가면서 저리도 심혈을 기울여 하는 작품인데 나라도 도와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 응하게 됐다."
―감회가 새로웠겠다.
"글쎄 창피해 죽을 지경이다. 지방공무원인 박중훈과 다큐감독인 강수연에게 공방을 안내하는 장면인데, 내가 너무 긴장해 있으니까 감독이 '웃으면서 하라고! 자, 레디 고!' 하고 외치더라. 난 그게 대사인 줄 알고 배우를 향해 '웃으면서 하라고!' 했다는 거 아닌가. 폭소가 터지더라. 영화배우 그만둔 걸 정말 잘했다 생각했다."
―1970년 MBC 탤런트 3기로 연기에 입문하셨다.
"김영애, 김수미가 동기들이다. 원래는 교사 되려고 광주서 서울 이모집에 올라와 대입 준비하는데 친척 한 분이 요즘은 방송 쪽이 발전 가능성이 크다며 자기가 직접 원서를 내주시더라. 얼떨결에 카메라 테스트도 하고 면접까지 했다."
―싹수가 있었나 보다. 치열한 경쟁 뚫고 합격하셨으니.
"심사위원 한 분이 그러더라. 얼굴도 괜찮고 카메라발은 더할 나위 없는데, 어쩜 그렇게 대사가 안 되느냐고."
■'버럭 임감독'…미운정이 사랑 되다
―임권택 감독 만난 것도 그맘때라던데.
"MBC 들어가 6개월간 교육받을 때 이런저런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했다. 어느 날 한 영화사에서 좀 보자고 하더라. 갔더니 웬 시커먼 남자가 말도 없이 대본만 던져주는 거지. 읽어보고 부모님 허락을 받아오래. 얼른 들어서 훑어보는데 '가슴이 보일 듯 말듯' 같은 표현이 나오더라. 화들짝 놀라 '나 이런 거 안 해요' 했더니, 그 남자 얼굴이 벌게져서 노려보데."
―그 시커먼 남자가 임 감독인가?
"그렇지. 내가 완강하니 제작자가 설득하더라. 야한 장면은 제작자가 못 찍게 하면 감독도 찍을 수 없다면서. 그래서 출연하기로 한 건데, 촬영 첫날부터 내가 또 말썽을 일으켰다."
―또 무슨 사고를?
"그땐 내가 철이 없었다. 한 달간 고창 선운사로 촬영을 갔는데 숙소를 보니 기가 막혔다. 광주서 부잣집은 아니어도 내 방 하나는 있었는데, 여관집 부엌 옆방에 셋이서 자야 한단다. 남자들 우글거리는데 문고리도 없이. 그래서 '여기서 못 잔다' 했더니, 임 감독 나를 불러 '네가 뭔데, 어르신들도 아무 말씀 없이 주무시는 방에서 자네 못 자네 하냐, 당장 그만둬라' 하며 버럭버럭 소릴 지르더라. 짐을 싸는데, 조감독이 왔다. 감독이 당신 방 내주신다 하니 거기서 머물라고. 못이기는 척 갔더니 감독이 책을 한권 휙 던지더라. 연기입문서였다."
―얼굴만 예쁘지 연기는 못 하셨나 보다.
"너무 못하니까 감독이 매일 아침 촬영 들어가기 전에 자기 방문 앞에 날 세워두고 연기지도를 하셨다."
―촬영 중에 광주 본가에서 맏딸이 배우된 사실을 처음 아셨다던데.
"아버지가 고창까지 올라와 노발대발하셨지. 스태프들이 달래느라 난리법석인데, 감독이 나서서 한마디로 정리하더라.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그 '책임'이 내 인생까지 해당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 영화가 데뷔작인가?
"'요검'이라고. 그 작품 이후로 임 감독이 나를 절대 주연으로 쓰지 않았다. 하하!"
■내가 '오란씨 1대 모델'
―주연은 아니지만 임 감독과 네 작품을 했다. 그 와중에 사랑이 싹튼 거고.
"처음엔 '선생님'이었다. 늘 혼내면서 가르치시니. 충무로 하숙방에 몰래 가서 꽃도 꽂아놓고 하다가 이성의 마음으로 발전했다. 현장에서만 무섭지 밖에선 자상하셨다."
―임 감독의 어떤 점이 좋았을까.
"내 친구들 요즘도 하는 말이 '네 남편은 처음 봤을 때나 40년 지난 지금이나 똑같다' 그런다."
―그래도 채령은 떠오르는 여배우고, 임 감독은 가난한 영화감독 아니었을까. 나이도 많고.
"그래서 내가 '선생님, 선생님' 하면서 쫓아다니는 걸 불편해했다. 날 떼어내려고 '맞선 본다' 거짓말도 하고, '난 괜찮은데 젊은 너는 소문 나면 안 좋다'고 말려서 데이트도 제대로 못 해봤다."
―연애사실 알려졌을 때 나름 스캔들이었겠다.
"내가 배우로는 뛰어나지 못했어도, 의상모델과 CF계에서는 잘 나갔다. 오란씨 광고 대박 나고, '섬유계(패션계)의 여왕'으로 통했다. 그런 여자가 열일곱 살이나 많은 감독과 연애한다고 하니 대문짝만 하게 기사가 나더라. 광주 집에서 난리가 나서 다음날 내가 임 감독 앞세워 내려갔다. '신문에도 났으니 결혼하겠다' 그랬지. 참 당돌했다."
―임 감독은 아무 말씀 안 하시던가.
"자기는 딸 달라 소리할 자격 없다고 하더라. 나는 감독의 그런 모습이 좋았다."
―8년 연애 끝에 1979년 앰배서더 호텔에서 결혼하셨다.
"내가 그날 엄청 울었다."
―선택을 잘못했다는 생각에?
"아버지 손 놓는데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 두려움도 있었을 거다. 8년을 한 사람만 보고 있었으니. 연애를 많이 해봤으면 비교라도 할 텐데."
―결국 '봉'을 잡으신 거 아닌가.
"난 '감독'이 아닌 한 '남자'를 보고 결혼했다. 그때만 해도 액션영화 찍는 감독 아니었나. 요즘도 내가 농담으로 '눈이 뼜지, 당신과 결혼했으니' 하면 감독도 그런다. '그래, 네가 눈이 뼜었지.'"
■'돈타령'은 안 했다
―부부싸움은 안 하시나.
"왜 안 할까. 그런데 내가 결혼 승낙받으러 갔을 때 어머니와 약속한 게 있다. '이 사람이랑 결혼하게 해주면 엄마 살아계실 때 나로 인해 눈물 흘리는 일 없게 하겠다'고. 그래서 노력했다."
―어떤 점이 마음에 안 드셨나.
"다 내 책임인데, 세상 돌아가는 물정을 전혀 모른다. 입때껏 은행, 동사무소, 세무서 등 관공서라고는 가본 적이 없다. 한번은 갑자기 돈 필요한 경우 생길까 봐 카드를 하나 만들어줬는데, 이 양반이 사흘도 안 돼 돈을 엄청 뽑아 썼더라. '뭔 돈을 그리 많이 뺐느냐'고 물었더니 감독이 깜짝 놀란다. '어떻게 알았느냐'고. 이사 다닐 때도 집을 얼마에 팔았느냐, 샀느냐를 묻지 않고 '이제 어디로 가면 되느냐'고 묻는다. 우편물이 오면 '임권택 앞'으로 온 것만 뜯어보지 다른 건 저만치 밀쳐놓는다. 그저 자기 행사와 관련해서만 '여기 꽃 보내라, 돈 보내라' 그러고."
―보살펴야 할 영화식구들이 많으실 테니.
"그래서 많이 싸웠다. 가족은 만날 뒷전이니 서운해 죽겠더라. 어디서 밥을 같이 먹어도 상대방 위주로 챙기고, 무조건 내 말은 틀렸다 하고. 이번에도 몸이 아프니 병원 스케줄부터 잡아야 하는데, 병원은 다음에 가고 영화부터 하자는 거지. 나 시집올 때 시어머님이 한걱정하셨었다. '선비도 아닌 것이 선비처럼 살려는 애다, 걱정스러워 어쩔꺼나.' 차에 필름 한 통 떨어져 있으면 제작사 거라고 반납하는 사람이다. 컵라면 한 개 떨어져 있어도 그런다."
―영화가 늘 흥행한 것은 아니니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있으셨겠다.
"김지미씨 주연이던 '비구니' 엎어졌을 때 힘들었지. 세무서에 소득신고하러 가서 140만원을 적어냈더니 직원이 '감독님은 음성적인 수입이 많지 않아요?' 하더라. 그래서 '제가 모르는 수입 있으면 좀 알려주세요' 했지. 그랬더니 직원이 또 이런다. '(이 돈으로) 어떻게 사세요?' 자존심이 확 상해서 '왜 못살아요? 다 살아요' 하고 나오는데 눈물이 쏟아지더라."
―돈 좀 많이 벌어오라고 바가지 긁으셨나.
"영화가 실패하면 우리 집 밥상에 반찬 수가 더 많아진다. 돈 때문에 미안해하는 거 아는데 바가지를 어떻게 긁나. 어제 생활비 주고도 다음날 '돈 없지?' 하는 사람이다. 돈이 있고 없는 게 중요한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 만나서 그 사람 좋아하는 거 해주고, 그래서 내가 사랑받으면 행복이지."
■강수연의 '굴욕'
―배우는 아니지만, 임 감독 따라 영화제에 많이 참석하셨다.
"친구들은 만날 영화제나 가고 좋겠다, 부러워하지만 난 제일 곤혹스러운 자리가 영화제다. 마지막 3일은 수상에 대한 '정보' 때문에 아주 피가 마른다. 칸에 가도 감독과 둘이 해변을 걸어본 적이 없다."
―영화 '취화선'(2002년)으로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 수상했을 땐 부부가 다 화제가 됐다.
"'춘향전'이 칸에 진출했다가 상 하나 못 받고 돌아올 때(2000년) 마음고생을 많이 해서 '취화선' 때는 제사 핑계 대고 안 따라갔다. 그런데 국제전화가 걸려왔다. 지금이라도 비행기 표 끊어서 빨리 오라고. 분위기가 좋으니 어서 날아오라고. 부랴부랴 짐을 싸서 갔더니 마지막 날까지 기다리란 통지를 받았단다. 감독상 받는 장면, 내가 눈물 터뜨린 장면이 카메라에 잡힌 모양인데 내가 누군지 모르는 해외언론이 '임 감독이 묘령의 여인을 동행했다'고 보도했다더라. 졸지에 마누라에서 묘령의 여인으로 격상됐다. 하하!"
―그만큼 미모가 뛰어나서 영화제에 임 감독 부인이 가면 여배우들이 싫어한다는 소문이 있더라.
"그럴 리가 있겠나. 자랑은 아니고 재미삼아 얘기하면, '아제아제바라아제'로 동경영화제 갔을 때 내가 삼십대였다. 앙드레 김 선생이 강수연씨에게 드레스 만들어주시면서 내게도 한 벌 해주시더라. 그때는 젊으니까 옷태가 좀 났는지, 드레스를 입고 만찬장에 갔더니 사람들이 감탄을 하더라. 그날 밤 감독이랑 대판 싸웠다. 여배우가 빛나야 하는데 당신이 그르쳤다고. 나더러 어쩌라고?"
―내조까지 잘한다는 엄청난 얘기도 들리던데.
"과대포장이다. 남의 손에 남편 밥상 맡겨본 적 없는 건 사실이지만, 어느 부인은 안 그럴까. 감독 하나에 보통 70명 식구가 달려 있으니, 집에서 스트레스받고 나가면 현장이 어떻게 되겠나 싶어 가능한 한 마음 편하게 해주려고 노력했다."
―몇십 년째 제자들, 후배들 세배 손님 치르시는 걸로 유명하다. 떡국 맛도 소문났고.
"나도 나이 들어 올해만 하고 그만 한다 선언해도, '그럼 우리는 어디로 세배를 가느냐'며 몰려오니 관둘 수가 없다. 사골 고아서 끓인 떡국인데 맛있다고들 하더라. 많으면 70명, 요즘은 삼사십 명. '장군의 아들' 때는 화장실 앞에 서서 먹는 사람도 있었다."
―동준, 동재 두 아들이 모두 영화의 길로 들어섰다.
"애들한테 아버지는 큰 산이자 콤플렉스다. 군대 가서도 사람들 알아볼까 봐 면회 한 번 못 오게 했다. 배우인 둘째아들(예명 권현상)은 이번 영화에 작은 역을 부탁했더니 절대 안 한다고 해서 연출부와 옥신각신했다더라. 제 형이 '아버지 영화가 아니고 임권택 영화에 출연한다고 생각해라' 설득해서 한 역 맡은 걸로 알고 있다."
■거장의 아내? 불편하지
―임 감독의 눈물을 보신 적 있는가.
"아니. 아, 이산가족 찾기 할 때 울더라. 그때 정말 쇼크였으니까. 영화 '길소뜸'이 그래서 만들어졌다."
―작품 흥행 안되면 술 드시고 우실 것 같은데.
"영화에 관한 한 독하고 단호한 사람이다. 100번째 영화 '천년학'이 잘 안됐을 때에도 일체 표를 안 냈다. 나만 안타까운 거지. 한편한편 자기를 다 짜내듯 만드니까. 그냥 재미삼아 찍는 법이 없다. 스태프들 새벽 6시에 집합하라 해놓고 당신은 3시 반부터 일어나서 들락거린다."
―가장 좋아하는 임 감독의 작품이 뭔가.
"만다라. 재개봉하면 좋겠다 싶을 만큼."
―거장의 아내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불편하지. 시장 가서 흥정을 해야 하는데 '임 감독 부인이시죠?' 하면 깎다 말고 '다음에 올게요' 하고 도망친다. 찜질방 갈 때 커피 값 아까워 냉커피 타서 싸가는데 그것도 좀 눈치 보이고. 그래도 마트 줄이 길게 서 있으면 일단 가서 서고 본다. '여기 뭐 파는데 이래요?' 하면서. "
―두 분 40년 사랑의 내공이 대단하시다. 닭살일 만큼.
"지금까지도 내가 감독에게 하는 질문이 있다. '내가 좋으냐, 영화가 좋으냐.' 유치하니 대답도 안 하지. 그런데 '취화선'으로 칸 영화제에서 상 받고 호텔로 돌아와서는 그러더라. '만에 하나 상을 받는다면 그 자리에 당신과 꼭 같이 있고 싶었다, 그래서 비행기 타고 오라고 했다.' 그게 내 질문에 대한 감독의 답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