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쓰고 남은 불용예산 처리를 두고 골머리를 앓아 온 홍콩 정부가 올해는 현금으로 돌려주겠다는 파격 선언을 했다. 연말정산을 통해 납세자에게 더 받은 돈을 돌려주는 환급이 아니라 18세 이상의 성인 모두에게 현금을 살포하는 화끈한 방식이다. 돌려받는 돈은 1인당 6000홍콩달러(한화 약 87만원).
홍콩의 존 창(曾俊華) 재정사장(재무장관)은 2일 "다양한 의견을 검토한 뒤 올해는 18세 이상의 600만 영주권자들에게 일률적으로 6000홍콩달러씩 모두 360억 홍콩달러를 현금으로 나눠주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그러고도 남는 예산은 세금 공제 등으로 돌릴 예정이다. 홍콩 의회는 4월 13일 이 안(案)의 가결 여부를 결정한다.
이 소식을 가장 반긴 사람은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성인이 된 만 18세의 13학년(고3) 또는 대학 신입생들로, "이게 웬 떡이냐!"며 교실이 떠나가도록 환호성을 질렀다. 해외에 흩어져 사는 100만 해외 홍콩인들도 지급 대상에 포함돼 횡재를 반겼다.
반면 서민과 재야단체 등은 "최악의 결정"이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는 2일 "고물가와 주택난, 실업난 등 여러 실정(失政)에 인기가 급락하자 홍콩 정부가 부자나 서민을 가리지 않고 인기만 높이려고 결정했다는 비판이 있다"고 보도했다. 도널드 창(曾蔭權) 행정수반이 지난 1일 시민단체 청년들에게 구타를 당할 만큼 민심이 악화되자 현금으로 사탕발림하려 한다는 지적도 있다. 외국에서 온 가사 도우미들도 현금 지급 반대 대열에 합류했다. 30만명인 동남아 출신 가정부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홍콩가정부협회의 앨런씨는 "홍콩에서 20년 이상 일한 외국인 가정부도 많은데 이렇게 외면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현금 살포로 0.2%의 물가상승 요인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했다.
불용예산 처리 논쟁은 홍콩에서 해마다 되풀이되는 풍경이다. 올해는 지난해 잔여 예산 700억 홍콩달러(약 10조원)를 놓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과거에는 예산이 남으면 전기·수도 요금을 보전해 주거나 은행 통장으로 송금해 주기도 했지만, 이번처럼 빳빳한 현금을 살포하기로 결정한 것은 처음이다.
1991년에는 이전 몇년간 남은 예산과 자키클럽(한국의 마사회와 비슷)의 이익금을 합쳐 홍콩과기대를 설립했다. 이 대학은 불과 19년 만에 아시아 랭킹 2위의 명문대학으로 도약해 잔여 예산을 현명하게 쓴 성공사례라는 칭찬을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