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재님이 1주일에 절반 이상은 여기로 나오십니다. 저희도 늘 비상이지요."

25일 찾은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 5층엔 긴장감이 흘렀다. 지난달 프로축구연맹 총재로 취임한 정몽규(49) 현대산업개발 회장은 개막(3월 5일)을 앞둔 K리그의 각종 현안을 챙기느라 축구회관에 머무는 시간이 많다고 했다. 인터뷰가 예정된 시간에도 정 총재는 안기헌 연맹 사무총장의 업무보고를 받고 있었다. 'K리그 혁신과 제2의 중흥'을 외치고 있는 그를 만났다.

"제가 맡고 나서 가장 많이 들은 얘기가 'K리그가 재미없다'는 겁니다. 그 비판엔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제가 봐도 재미없을 때가 적지 않았죠." 정몽규 총재는 K리그의 현실을 애써 포장하려 하지 않았다. 프로축구는 지난해 국내 최고 인기스포츠로 확실히 자리매김한 프로야구의 위세에 완전히 밀렸다.

야구가 역대 한 시즌 최다관중을 기록하는 동안 축구는 TV 중계조차 쉽게 볼 수 없는 상황을 맞았다. K리그 팬들은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보기 위해 해외 인터넷 사이트를 돌아다녀야 했다.

축구인들 사이에도 "이러다 프로축구가 영원히 '이류'로 전락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프로축구의 위기이자 기회의 시간인 올해 연맹 수장에 오른 정몽규 총재의 어깨가 무거운 이유다.

"승리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문제"

정 총재는 "지금 K리그는 100점 만점에 60점짜리"라고 했다. "관중 수나 수익 면이나 아직 한참 모자란 것이 사실입니다. 제 목표는 2~3년 안에 85점을 만드는 것입니다."

정 총재는 울산 현대(1994~1996)와 전북 현대(1997~1999)를 거쳐 지금의 부산 아이파크까지 18년째 프로축구 구단주로 있다. 그런 그가 "승리에만 집착한 구단이 문제였다"고 말했다.

"지금 이 자리에 오니 그동안 안 보이던 것들도 보게 되더군요. 구단들은 그동안 장기적인 관점에서 팀을 운영하지 못했습니다." 정 총재는 "우승을 하기 위해 각 구단이 무리한 선수 쟁탈전을 벌인 결과 선수들의 몸값이 실력에 비해 올라갔고 이것이 구단의 재정 압박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그 와중에 정작 중요한 팬서비스는 실종됐다는 것이다.

"유망주를 발굴해 지역의 스타로 키우면 팬은 자연히 늘어날 겁니다. 그런데 매 시즌 우승에 연연하다 보니 거액을 들여 선수를 데려오는 데 급급했죠. 그동안 재능 있는 기대주들은 일본으로 건너가 버렸습니다. 미래의 스타를 빼앗긴 거죠." 정 총재는 "리그와 컵대회, 챔피언스리그 중 좋은 성적을 올릴 가능성이 큰 쪽에만 올인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경기를 어떤 팬들이 좋아하겠느냐는 것이다.

정 총재가 두 팔을 걷고 나선 것은 그동안 잘못된 관행과 낡은 제도가 순수한 축구인들의 열정을 살려주지 못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의 K리그는 저평가된 상품이었다"면서 "발상의 전환으로 새로운 발전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팬 끌어모을 방법을 머리 싸매고 고민하겠다

"제대로 된 축구를 경기장에서 직접 본 팬들은 축구의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선수들이 공을 쫓는 움직임은 정말 아름답거든요. 축구는 무엇보다 원초적이고 자극적인 상품입니다. 얼마나 포장을 잘하느냐의 문제죠."

정 총재는 인터뷰에서 '팬서비스'라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야구만 해도 팬들이 소풍 가는 기분으로 경기장에 가는 것 같아요. 축구에도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를 많이 도입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선수들부터 달라져야겠지요. 전 프로축구 선수들이 어떤 종목보다 재미있게 인터뷰를 하는 모습이 보고 싶습니다." 정 총재는 "AFC의 결정으로 2014시즌 전까지 리그 성적에 따라 1부리그 하위팀과 2부리그 상위팀이 자리를 맞바꾸는 승강제를 도입해야 한다"며 "착실한 준비를 통해 승강제가 잘 정착된다면 훨씬 재미있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촬영을 위해 공을 들어달라는 부탁을 하자 정 총재는 손가락으로 공을 돌리는 '묘기'를 보였다. "축구 보는 것도 좋아하지만 농구 명문인 용산고 출신이라 농구가 더 자신 있습니다." 스페인리그 FC바르셀로나의 경기를 즐겨본다는 정 총재는 스키와 수상스키, 사이클 등을 두루 섭렵한 만능 스포츠맨이다. 활기찬 표정엔 의욕이 넘쳤다.

"K리그는 분명히 더 좋아질 겁니다. 재미있는 K리그를 위해 머리를 쥐어짜고 있으니 팬들도 많은 사랑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리그 초반에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