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현판 글씨와 관련, 어떤 사람 어떤 글씨를 뽑아도 뒷말이 있을 것이란 우려 때문에 이를 피해 갈 갖가지 아이디어가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현재의 글씨를 그대로 쓰자는 의견, 안평대군·한석봉 등 옛 대가들의 글씨를 집자(集字)하자는 의견이다. 그러나 지금의 현판 글씨는 붓글씨 특유의 획(劃) 느낌도 없고 기세와 위엄도 없는 죽은 글씨다. 옛 글씨 집자, 즉 짜깁기는 아무리 좋은 글자를 모아도 맥(脈)이 끊어진 글씨다.
붓글씨를 휘호할 때는 일필휘지(一筆揮之)로 단숨에 써내야 한다. 그래야 기세(氣勢)와 운(韻)과 혼(魂)이 살아서 몇백 년 지나도 볼수록 좋은 현판이 되는 것이다.
새로 중건한 광화문에는 이 시대의 글씨로 현판을 만들어 걸어야 마땅하다. 우리 시대 최고의 글씨로 바꾸려면 전국 시·도에 네트워크를 가진 한국미술협회와 서예 관련 협회들을 통해서 전국 규모로 글씨를 공모하는 게 방법이다. 현판 실물크기(3950×1350㎜) 규격으로 쓰게 할 것인지, 한자와 한글을 함께 공모할 것인지, 논란거리를 미리 정리하고 공모 요령도 심사숙고하여 만들 필요가 있다. 까다로운 일이지만 문화재청은 하나하나 국민의 공감을 얻어가며 해내야 한다.
가려내는 것은 조선시대 왕비나 왕세자빈의 배우자를 고를 때 썼던 삼간택(三揀擇) 방식을 택하면 어떨까. 세 번의 선택 과정에서 뽑힌 3점 글씨를 모두 당선 작품으로 하고 마지막으로 현판에 들어갈 한 점을 뽑는 것이다. 삼간택에선 "최후로 뽑아 올린 삼망(三望)을 임금이 그 이름 위에 점(點)을 찍었다"는 관례가 있다. 대통령 또는 이 시대의 존경받는 원로들로 구성된 위원회가 낙점(落點)할 수도 있고 민주주의 시대에 맞게 국민들이 투표로 뽑는 방법도 연구해볼 만하다. 낙점된 작가는 광화문 광장에서 명창의 판소리에 맞추어 '광화문' 현판 글씨를 휘호하는 퍼포먼스를 한다. 매스컴을 통해 국민들에게 삼간택 과정과 최후 낙점하는 순간을 보여준다면 국민적 공감대 속에 온 국민의 축제로 승화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