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숭배, 비밀 유지, 법적 속임수, 마케팅. 우리는 많은 걸 배웠다. 하필이면 우리가 싸웠던 적으로부터."
비밀 폭로 전문사이트인 위키리크스(Wikileaks)의 '이인자'는 그의 보스 줄리언 어산지(39)와 결별하며 이렇게 탄식했다. 11일 세계 18개국에서 동시 출간된 다니엘 돔샤이트-베르크의 '위키리크스: 마침내 드러나는 위험한 진실'(지식갤러리)의 한 대목이다. 책에는 세상의 모든 권력과의 싸움에 나섰던 천재 해커가 어느새 스스로 독재자로 변해가는 과정이 담겼다. 어산지가 성추행 혐의로 런던 법정을 오가는 사이, 이 사내의 앞뒤를 조명하는 책들이 매일같이 쏟아지고 있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 기자들이 쓴 '위키리크스-권력에 속지 않을 권리'(21세기 북스)가 2월 1일 출간된 데 이어 뉴욕타임스와 가디언 기자들도 최근 각각 어산지와 위키리크스를 해부한 책을 펴냈다. 공통점은 그동안 대중 속에 자리 잡은 '어산지=인터넷 영웅'의 이미지를 흔들고 있다는 점이다.
◆인터넷 시대의 체 게바라?
위키리크스 초기만 해도 어산지의 타도 대상은 권력과 비밀이었다. 히피이면서 기성세대에 반항한 '68세대' 어머니의 기질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지능지수 146~180을 오가는 '천재 해커'로 자란 그는 남미 해방을 꿈꾸던 체 게바라가 그랬듯, 세계를 떠돌며 동지를 찾았다. 세계사회포럼 같은 좌파 성향의 운동가들 모임이나 IT 해커들 모임이 단골 순례지였다. 2006년 폭로 전문사이트 위키리크스를 설립하면서 '다른 세계를 가능케 할 최선의 아이디어'라며 가슴 벅차했다.
단순한 몽상가는 아니었다. 자신이 인정하는 실력자에게는 언제나 손을 내미는 전략가였다. 선구적인 기밀폭로 웹사이트 '크립톰'의 운영자인 존 영에게 협조를 구했고 미국 '내부고발자'의 대명사인 대니얼 엘즈버그(베트남전 기밀문서 '펜타곤 페이퍼' 폭로)에게도 편지를 썼다. 위키피디아 창립자인 지미 웨일스에게도, 불발에 그쳤지만 협력을 제안했다. 어산지는 중국까지 여행하면서 그곳 '반정부 해커'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했다고 주변에 자랑했다.
그는 스스로 "좌냐 우냐를 굳이 따진다면 좌파"라고 했지만 "좌파 중 상당수는 역겹다"고도 했다. 좌파 영화감독인 마이클 무어는 어산지에게 보석금 2만달러를 기부했지만 평소 어산지는 그를 '멍청이'라고 했다. '반미주의'도 다분히 전략적인 것이었다.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했을 때 가장 '실속 있는' 공격 대상이라는 게 그의 계산이었다.
◆권력과 싸우는 독재자?
하지만 어산지는 점점 자신이 맞싸우던 '적'을 닮아갔다. 어릴 적 사이비종교 광신도였던 의붓아버지에게 시달렸던 그는 신흥종교인 사이언톨로지의 비밀 경전을 처음으로 폭로하는 등 일전을 불사했다. 하지만 스스로 교주처럼 굴었다. 돔샤이트-베르크는 "내부 비판 시스템에 관한 한 거의 종교적 숭배 수준"이라고 말했다. "잘만 하면 노벨평화상을 받을 것 같아"라며 공명심도 숨기지 않았다. 어산지는 또 스위스 은행의 비밀을 폭로했지만 자신의 회계 문제는 불투명하다.
언론관도 변해갔다. 위키리크스의 초기 폭로에 대한 언론의 반응이 기대에 못 미칠 때마다 그들(기자)은 '돼지 목에 진주'라고 불평했지만 어느 순간 유력지들과 손잡았다. 과정도 투명하지 않았다. 런던의 가디언 본사에 차려진 비공개 회의실에서 뉴욕타임스, 슈피겔 등과 보도 전략을 협의했다. '정보를 있는 그대로 공개한다'던 원칙은 '전략적 선택과 공개'로 바뀌었다.
◆추종자를 만드는 카리스마 vs 편집증적 과대망상
그럼에도 저자들은 어산지의 천재성과 대단한 카리스마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그에 대한 반응이 열광적 지지와 혐오로 양분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슈피겔의 마르셀 로젠바흐 기자는 "그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불러일으키고, 열광시키고 추종자로 만드는 재능이 있다. 분열과 대립을 불러일으키는 중에도 대중을 사로잡는 매력을 발산하는 정치가를 연상시킨다"고 썼다.
반면 돔샤이트-베르크는 "그는 극단적으로 천재적이지만 동시에 극단적으로 권력에 사로잡혀 있다. 극단적 편집증에 과대망상"이라고 평했다.
초기 운영 원칙이 무너지면서 내부 이탈자들도 속속 나오기 시작했다. 돔샤이트-베르크는 위키리크스가 '1인 조직'으로 변질됐다면서 작년 10월 새로운 '오픈리크스'를 차려 독립했다. 일부 전문 기술요원도 따라 탈퇴하면서 지금 위키리크스 사이트 가동은 예전 같지 않다. 돔샤이트-베르크는 '한때는 나의 우상'이었던 어산지와 결별하며 "결국 수천 개의 위키리크스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