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떠나야 그 빈자리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지난 10년간 한국 축구에서 박지성과 이영표의 비중이 어떤 것이었는지 이들이 떠나고 나니까 확실히 보였다. 한국은 10일 오전 트라브존에서 열린 터키와의 국가대표 축구 A매치에서 계속 밀리는 무기력한 경기 끝에 0대0 무승부를 기록했다. 전반 26분에야 첫 슈팅이 나왔고 후반 14분에 터키 벨로조글루가 비신사적 반칙으로 퇴장당한 뒤에도 분위기를 뒤집지 못했다.
■'박지성 대안' 못 찾아
한국 공격진은 지동원을 원톱으로 하고 왼쪽부터 구자철·박주영·남태희가 뒤를 받치는 공격진을 구성했다. 한국 공격진은 전반전부터 '풍차 돌리기'를 하는 것처럼 바쁘게 포지션을 바꿔야 했다. 박지성의 자리는 구자철→박주영→지동원이 돌아가며 맡았다. 일종의 '박지성 구멍 메우기' 실험이었다. 나중엔 오른쪽 윙인 남태희까지 왼쪽 박지성 포지션에 들어섰다.
하지만 원래 중앙 공격수인 지동원과 박주영이 박지성 자리로 가면 공격력이 크게 떨어졌고 포지션을 자주 바꾸다 보니 선수들끼리 동선(動線)이 겹치는 장면이 자주 나왔다. 실험결과는 '누가 들어와도 아직 박지성의 공백을 메울 수 없다'는 결론이었다. 경기가 꼬일 때면 저돌적인 돌파와 정확한 패스로 숨통을 터주고 때로는 위험지역에서 프리킥을 얻어내던 '캡틴 박지성'의 공백이 시간이 갈수록 크게 느껴졌다.
■우왕좌왕 수비진
수비 핵심인 이영표가 없는 데다 차두리까지 부상으로 나오지 못하면서 한국 수비는 홍철·이정수·황재원·홍정호(왼쪽부터)의 낯선 조합으로 구성됐다. 이영표의 백넘버 12번을 달고 출전한 홍철은 긴장한 모습이었고 차두리 대신 나온 홍정호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두 선수 모두 순간적으로 상대를 놓친 뒤 무리한 반칙을 시도해 위기를 자초하기도 했다. 전반까지 팀 반칙 개수가 터키 5개, 한국 15개로 한국이 세 배나 많았다.
양 측면 수비가 흔들리자 가운데 이정수와 황재원의 부담은 더욱 커졌다. 공을 걷어내는 데 급급했으니 역습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돋보인 수비수는 골키퍼 정성룡뿐이었다. 정성룡은 전반 10여분까지 불루트·알틴톱·에키치가 터뜨린 릴레이 슈팅을 다이빙 펀칭으로 막아내는 등 끝까지 무실점을 지켰다.
■"한국엔 스타가 필요하다"
거스 히딩크 터키 대표팀 감독은 "한국은 예나 지금이나 에너지가 넘치고 정신력이 강한 팀"이라며 "박지성처럼 유럽 빅리그에서 뛰는 스타 선수가 2~3명 나온다면 한국은 훨씬 강한 팀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한국의 경기력이 '2%' 아쉽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히딩크는 "2002년 월드컵 당시를 돌이켜보면 박지성과 이영표도 보통 선수 중 하나였다"며 "젊은 선수들 가운데 제2의 박지성이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조광래 감독은 "박지성·이영표의 공백을 메우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