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서울 오금동 송파렘넌트 지역아동센터. 다큐멘터리 감독 이진혁(28)씨가 저녁 식사하는 아이들 20여명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사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과 잡채, 김치 등이 동그란 쟁반 위에 차려져 있다.
이씨는 지난해 9월부터 사회복지단체 하트-하트재단과 함께 국내 저소득가정 어린이와 해외 빈민촌 어린이를 돕기 위한 영상을 찍고 있다. 이씨와 재단은 이 영상을 인터넷에 올려 후원금과 봉사신청을 받는다. 화상(火傷) 입은 저소득층 어린이 영상을 보고는 네티즌들이 1800만원의 후원금을 보내와 치료비로 전달해주었다. 이씨는 "나처럼 고통스러운 어린 시절을 겪는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씨는 초등학교 시절 대기업 임원이던 아버지 덕에 여유롭게 살았다. 하지만 어머니가 보증 섰던 친척의 사업이 부도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아버지는 회사에 사표를 냈고, 이후 술로 세월을 보냈다. 어머니가 파출부로 생계를 꾸렸다. 중학 1학년이던 그와 동생은 안양의 이모에게 맡겨졌다.
고1 때는 반장에 당선됐지만 지독한 가난 탓에 겪은 설움이 많았다. 친구들과도 제대로 어울리기 힘들었다. 그는 "밤에 이모가 들을까 봐 이불을 뒤집어쓰고 펑펑 운 적도 있다"고 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영화감독을 꿈꾸던 이씨는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는 "촌지를 요구하는 교사, 가난한 학생을 따돌리는 친구…. 이런 현실을 고발하고 싶었다"고 했다. 결국 고3 때 자퇴했다. 그는 "참고서도 살 수 없었고 대학 갈 돈도 없었다. 빨리 일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단칸방에서 하루 4시간만 자면서 낮엔 아르바이트, 밤에는 다큐멘터리를 찍었다. 대여점에서 동영상 기능이 있는 카메라를 빌렸다. 제대로 먹지도 쉬지도 못한 탓인지 응급실에 네 차례나 실려갔다. 그렇게 만든 작품으로 2010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 사전제작지원 부문에서 우수상을 받았고, 다른 공모전에서 상을 10개나 받았다. 그는 "소외된 이웃들의 이야기를 표현한 게 좋게 평가받은 것 같다"고 했다.
이후로는 CF, 웨딩영상, 홍보물 같은 일거리들이 들어온다. 요즘은 강남에 사무실을 내고 종합영상프로덕션을 운영하고 있다. 다음 달에는 단칸방에 사는 부모님 집도 옮겨 드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