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5시 서울 영등포경찰서 정문에 더플백(의류대)을 멘 전·의경 대원들이 속속 나타났다. 경찰 기동대 버스에서 내린 이들 중 상당수가 왜 이곳에 소집됐는지 모르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대원들은 1층 현관에 붙은 '전·의경 특별면담'이라는 안내문을 읽고 집결지인 경찰서 5층 대강당으로 향했다. 대강당에 모인 이경 200여명은 A4 용지에 선임병들에게 구타나 가혹행위를 언제, 어디서, 어떻게, 얼마나 당했는지에 대해 기록하기 시작했다. 30여분 동안 무거운 침묵이 강당에 흘렀다.

경찰청은 이날부터 전국 16개 지방경찰청의 전·의경 대원 중 부대에 배치된 지 6개월 미만의 이경 5100여명을 상대로 '구타 및 가혹행위 특별점검'을 실시했다. 지난 23일 발생한 강원경찰청 307 전경대 소속 전경 6명의 집단 탈영 사건과 관련해 경찰청이 본청 국장·과장을 팀장으로 하는 20개 특별점검팀을 투입해 이틀 일정으로 대원들의 속내를 듣는 자리였다.

전·의경 가혹행위 의혹이 잇따르는 가운데 26일 인천 지역 전·의경들이 특별 면담을 하기 위해 인천경찰청 대강당에 모였다.

이날 오후 수서경찰서 5층 강당에도 서초·강동·방배 등 강남권 경찰서 소속 이경 200여명이 모여 고충을 털어놨다. 특별점검팀 관계자는 "부담을 느끼지 않고 피해 사실을 기록하도록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었다"면서 "일단 문제가 있다고 기록한 대원들은 따로 불러 심층 면담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날 하루 9개 점검팀이 조사한 서울·경기·인천·충남·대전경찰청 소속 이경 2600여명 중 190여명이 구타와 가혹행위, 욕설과 폭언 등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일선 경찰서 막내 급인 이경들은 이날 오후 2시쯤 '모든 개인 소지품을 정리해 더플백에 담고 집결 대기하라'는 지시를 전달받았다. 한 이경은 "오후 방범을 나가러 기동대 버스에 탔는데 선임병들이 갑자기 내리라고 하더니 짐을 싸라고 했다"며 "영문을 몰라 두려웠다"고 했다. "혹시 우리 부대가 해체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는 대원도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짐을 싸도록 한 것은 대원들이 솔직하게 피해 사실을 털어놓게 하기 위한 조치"라고 했다. 경찰은 피해 사실을 신고한 뒤 부대에 복귀할 경우 선임병들에게 괴롭힘을 당할 우려가 있다고 보고 아예 부대에 돌려보내지 않고 지방경찰청이 직접 관리할 계획이다. 각자 희망지에 배치하거나 교통질서와 단속 업무를 담당하는 부대를 별도로 창설해 제대할 때까지 근무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피해 사실을 솔직히 보고한 대원은 포상휴가를 줄 방침이다.

경찰청은 이날 구타·가혹행위를 한 강원경찰청 307 전경대원 12명을 형사처벌하기로 했다. 예방·후속조치를 제대로 하지 못한 전경대장 등 지휘요원 5명에 대해서는 파면·해임 등의 징계를 내리고 307 전경대는 부대 자체를 해체하기로 했다. 경찰청 장전배 경비국장은 "강원경찰청 소속 전·의경 700여명 중 3분의 1을 다른 지방경찰청으로 이동 배치하고 그 공백은 강원경찰청의 경찰관들이 대신하도록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