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시인 이지마 고이치가 쓴 '모국어'란 시가 있다. "모국어라는 말 속에는/엄마(母)와 나라(國)와 언어(語)가 있다." 이 '엄마'와 '나라'와 '언어'로부터 떨어져 살 때 그는 시를 쓸 수 없었다고 했다. 시인의 마음은 같은 것일까. 김현승은 이렇게 노래한다. "가을에는/기도하게 하소서/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시인과 작가 중에는 그러나 제 나라를 떠나 다른 언어로 작품활동을 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아일랜드 출신 극작가 베케트는 프랑스어로 '고도를 기다리며'를 썼다. 체코 출신 카프카는 독일어로, 폴란드 출신 콘라드는 영어로 소설을 썼다. 생존 작가로는 중국 출신 샨사가 프랑스어로 '바둑 두는 여자'를, 하진이 영어로 '기다림'을 썼다.

▶미셸 투르니에는 모국어로 쓰지 않은 작품에 대해 '뒤늦게 습득한 뿌리 없는 언어, 합성되고 완벽하게 흉내 낸 언어'라고 했다. 이런 삐딱한 시각에 대해 체코 출신으로 프랑스에 망명해 프랑스어로 작품 활동을 한 밀란 쿤데라가 한 말이 있다. "스무살 넘어 한 군데 20년 동안 살면 거기가 (문학적) 조국이다."

▶재일교포 문인 1세대인 김시종(82)은 제주사태 때인 1949년 일본으로 밀항해 일본어로 시작(詩作) 활동을 해왔다. 같은 외국어라도 김시종에게 일본어가 갖는 의미가 카프카와 독일어의 관계 같을 수는 없다. 그는 "나는 내 요람 시절의 꿈을 가득 품고 있는 일본어를 버릴 마음이 전혀 없다"고 했다. 그런 한편 "(일제강점기) 과중한 규제를 받으며 습득한 일본어를 일본인의 시각, 일본인의 감성, 일본인의 사유를 깨뜨리는 최대의 무기로 구사하고 싶다"고도 했다.

▶김시종의 근작 시집 '잃어버린 계절'이 최근 일본의 대표적 시 문학상인 '다카미 준 상(賞)'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고국과 일본/나 사이에 얽힌/거리는 똑같다면 좋겠지//사모와 견딤/사랑이 똑같다면/견뎌야만 하는 나라 또한/똑같은 거리에 있겠지." 모국어와는 다른 언어의 이중 삼중 무게를 견디며 꼿꼿이 시의 길을 걸어온 김씨의 문학 정신에 박수를 보낸다. "다다를 수 없는 곳에 지평이 있는 것이 아니다/네가 서 있는 그 지점이 지평이다." 김씨의 시를 '한국 문학'이라 부를 순 없을지 모르지만 그는 한국인 문학의 지평을 넓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