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의 재정위기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주 벨기에의 국채 수익률이 치솟고 독일 국채(분트) 수익률과 스프레드가 커지면서 투자자들은 더욱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벨기에의 부채율은 높지만, 그리스나 아일랜드와 같은 재정 불량국보다 재정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편이다. 그럼에도 안심할 수 없는 이유는 벨기에가 약 7개월째 실질적 무(無)정부 상태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벨기에는 북부 네덜란드어권 플레미시와 남부 프랑스어권 왈로니아 간의 갈등으로 지난 6월부터 연립정부가 구성되지 못했다. 지난해 의회를 해산하고 시행된 조기총선에서 '새플레미시연대'가 제 1당이 되었지만 왈로니아 측 정당이 연립정부 구성에 대한 1당의 제안을 반대하면서 교착 상태에 빠졌다.

벨기에는 17일(현지시각) 현재 217일째 실질적 무정부 상태를 지속하면서 유럽에서 연립정부 구성 협상 기간으로 최장 기록을 세웠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는 네덜란드가 1977년 208일, 2007년에 194일로 세운 기록을 새로 쓴 것이다.

현재 벨기에는 이브 레테름 총리가 관리내각(caretaker)을 이끌고 있는데 높은 부채율을 줄이기 위해 필요한 긴축재정 등 각종 경제 정책들이 제대로 마련되지 못하면서 재정위기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GDP 대비 340%에 달하는 금융권 문제도 언제 터질 지 모르는 폭탄이다.

국왕인 알베르 2세는 교착 상태를 돌파하기 위해 플레미시와 왈로니아가 협상을 볼 수 있도록 특별 중재인을 임명해 7개 정당에 연립정부 구성을 고려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양측의 갈등은 완화되지 못하고 있어 당장 필요한 정책 협상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말에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정치적 혼란에 따른 재정위험 고조를 들어 벨기에의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됐다.

이에 알베르 2세는 지난 10일(현지시각)에는 레테름 총리의 내각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 적자의 비율을 현재 목표치인 4.1%보다 낮출 수 있도록 긴축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레테름 총리는 올해 재정 적자를 GDP대비 적자율을 4% 이하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는 벨기에 중앙은행이 예상했던 4.7%보다 큰 폭으로 낮아진 수치다. 레트름 총리는 "벨기에의 경제적 펀더멘털은 튼튼하고 내년부터 부채 규모를 줄여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게 전망했다.

디디에 레인데스 재무장관에 따르면 벨기에의 지난해 GDP 대비 적자 비중은 전년 6%에서 4.6%로 줄어든 상태다. GDP 대비 국가 부채 비율은 96.2%에서 97%로 증가했다. 레인데스 재무장관은 블룸버그 TV와 인터뷰에서 "2월 초부터 새 연립정부를 구성하기 위한 협상이 진척되서 준비 작업에 착수할 수 있을지 여부를 알게 될 것"이라면서 "(협상이 진척되지 않은 상황이라면) 관리내각이 직접 올해 재정예산안에 대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벨기에 정부는 유럽연합(EU)과 합의에 따라 내년까지 GDP 대비 적자 비중을 3% 미만으로 줄여야 한다. 벨기에 재무부 통계에 따르면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국채는 200억 유로 규모에 달한다.

무엇보다 벨기에 금융권이 가장 큰 우려 대상이다. 벨기에 은행들은 재정위기 때 가장 먼저 지원이 필요했었고 아일랜드 등 재정불량국의 국채를 상당한 규모 소유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밝혔다. 이 때문에 일부는 주변 국가들의 재정 문제가 벨기에를 통해 전염될 것을 불안해하고 있다.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에밀 게이는 "벨기에 금융권이 여전히 취약하다"면서 "다른 국가가 부도 위험에 처하게 되면 벨기에에 아주 빠르고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블룸버그는 이제 투자자들이 이탈리아 국채보다 벨기에 국채를 더욱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요 외신은 알베르 2세의 지도력으로 플레미시와 왈로니아가 연립정부 구성 협상 테이블에 다시 돌아오는 길이 최선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알베르 2세는 최근 특별 중재인을 다시 파견하면서 뉴플레니시당의 당수와 왈로니아 측의 당수에게 "정치적 교착 상태를 빠져나오기 위한 선제적인 조치가 당장 필요하다"고 시급성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