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를 둘러싼 정치권의 논쟁이 야당 내 '증세(增稅) 논쟁'으로 옮아붙는 양상이다. 한나라당이 복지 확충을 얘기하면서 '감세(減稅) 철회'냐 '감세 유지'냐 논쟁을 벌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민주당도 '무상(無償)시리즈'로 급가속 페달을 밟으면서 "증세(增稅)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17일 오전 민주당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
첫 발언자로 나선 손학규 대표는 최근 당내 정책통들이 "세입을 늘리지 않고는 어려운 정책"이라며 제동을 건 '무상복지정책'과 관련해 "우리 재정구조에서 세입세출 구조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시대정신이요, 철학이요, 의지"라고 했다. 무상복지 기조는 유지하면서도 증세는 생각하지 않겠다는 얘기였다. '내부 논쟁보다는 수정·보안을 통해 숨 고르기를 하자'는 뜻도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민주당 당직자).
그러나 다섯 번째로 발언한 정동영 최고위원은 증세(增稅)를 정면 거론했다. 그는 "세금 없는 복지국가가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받아들여야 한다"며 "보편적 복지는 부자증세 속에서 재원을 마련해 가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 최고위원은 작년 10월 전당대회 때부터 '역동적 복지국가론'을 내세우면서 재원 마련 대책으로 부유세의 도입을 주장해왔다. 그는 이날 '세금에 대해 정면으로 얘기하지 않는 복지국가 담론은 허구'라는 성명서도 냈다.
앞으로 민주당 내 증세 논쟁은 점점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2007년 대선 패배 원인을 '진보성의 결여'로 진단하는 정 최고위원이 지속적으로 '증세 공세'를 펼치면서 손 대표를 압박할 것이란 관측이다. 정책통으로 불리는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정동영 의원이 공격하면 할수록 손 대표가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정책위가 내놓은 무상복지안(案)은 증세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 지도부 입장은 '증세 불가(不可)'로 수렴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복지 확대에는 찬성해도 세금 신설이나 세율 인상은 반대하는 국민적 정서를 감안할 때 증세를 선택할 순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이는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중도층 공략의 필요성과도 연결돼 있다. 이는 한나라당도 마찬가지여서 세금정책을 둘러싼 여야 유력 대선주자들의 입장은 '가운데'로 수렴하는 모습이다.
한나라당의 경우 박근혜 전 대표가 '한국형 복지'를, 안상수 대표가 '70% 복지'를 제시하면서 '소득세 감세를 부분 철회해야 한다'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나성린 등 일부 의원이 주장하는 감세유지론과 비교하면 기존의 한나라당 입장에서 '좌 클릭'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민주당의 무상복지에는 철저히 대응한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에선 정 최고의원 외에 천정배 최고위원이 "상위 계층에 대해 기존 소득세에 더해 일정 비율을 할증시키는 프랑스식 사회복지세를 부가세 형태로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할 만하다"며 증세론에 가세했다. 하지만 손 대표뿐 아니라 박지원 원내대표도 "증세 불가"라고 밝혔고, 당내 정책통 의원들도 모두 같은 입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