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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과 심부름꾼
이언 맥길크리스트 지음|김병화 옮김|뮤진트리|766쪽|4만원

퀀텀 브레인
제프리 새티노버 지음|김기응 옮김|시스테마|439쪽|2만원

뇌(腦)는 여전히 미지의 세계다. 20세기 들어 인간은 거시적으로는 우주(宇宙)로 나아갔고, 미시적으로는 원자(原子)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정작 소우주(小宇宙)인 뇌(腦)는 오랫동안 입구조차 제대로 찾지 못한 채 눈 가리고 더듬는 수준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최근 사정이 크게 달라졌다. 20세기 말부터 미국·일본 등 선진국 과학자들이 뇌 탐색에 뛰어들기 시작했고, 21세기 들어 그 성과들이 속속 나오기 시작했다. 다양한 촬영기기의 출현으로 뇌를 직접 보는 게 가능해졌고 분자생물학 등의 눈부신 발전은 뇌의 구성과 작용을 둘러싼 신비들을 속속 풀어내고 있다. 뇌과학은 이제 교양과학의 대표 분야로 자리 잡을 만큼 큰 관심을 끌고 있다.

게티이미지

'주인과 심부름꾼'은 그동안 뇌과학에서 이루어진 최신 연구성과를 뇌의 우반구와 좌반구로 나눠 설명한 다음, 이런 관점에서 서구의 문명사를 풀이한다. 책의 1부는 뇌의 두 부분, 우반구와 좌반구가 어떻게 다른지에 관한 신경과학 분야의 성과를 일상용어로 풀어서 보여준다. 우반구는 세계와의 최초 접촉, 즉 새로운 지식을 주관한다. "우리의 경험세계에 새로 들어오는 모든 것은 즉시 노르아드레날린 호르몬을 방출하는 방아쇠를 건드리는데, 이 작용은 주로 우반구에서 일어난다." 새로운 지식이나 기술이 익숙해지면 그것을 다루는 소관은 좌반구로 넘어간다. "좌반구는 알고 있는 것만 다루기 때문이다." 당연히 우반구는 창의적이고, 좌반구는 논리적이다.

좌반구는 국소적이고 단기적인 반면, 우반구는 더 큰 그림을 본다. 좌반구는 추상화하고 범주화하는 데 능한 반면 우반구는 맥락 속에서 개체를 살피는 데 능하다. "좌반구의 성향은 등급을 분류하는 것이고, 우반구의 성향은 개별자를 확인하는 것이다." 당연히 좌반구는 사물 간의 공통점에 관심을 두고 우반구는 차이점에 관심을 둔다. "우반구는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친근하게 느끼는 반면, 좌반구는 기계적인 모든 것을 친근하게 느낀다."

1부를 마무리하면서 저자는 자신의 의도를 분명히 드러낸다. 우반구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 속의 역사, 특히 서구의 문명사는 좌반구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왔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것이 2부다. 고대그리스부터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계몽주의, 낭만주의와 산업혁명, 근대와 포스트모던 등 역사의 주요 전환점을 중심으로 저자는 좌반구와 우반구가 어떻게 갈등하는 가운데 좌반구가 주도권을 쥐게 되었는지를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

르네상스의 경우를 보자. 르네상스는 경험의 중요성에 눈을 뜨면서 시작됐다. 그것은 우반구의 영역이다. 그래서 초창기는 좋았다. "르네상스는 우반구적 방식의 거대한 확장으로서, 그 속으로 좌반구적 작업이 통합되어 들어오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르네상스가 진행되면서 우반구적인 존재방식에 대한 강조에서 점차 좌반구적 비전쪽으로 이동해 갔다." 공존하는 '개체'는 배제되고 원자론적 '개체성'이 강조되면서 독창성은 더 이상 지혜의 원천이 아니라 비합리적인 과거를 내치는 방법으로 여겨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계몽주의라고 알려진 오만한 운동의 토대가 되었다." 책의 제목은 바로 그 점을 지적한다. "그동안 지혜롭게 백성을 다스려 평화와 안정을 주었던 주인(우반구)은 심부름꾼(좌반구)에 배신당해 사슬에 묶여 끌려가 버렸다."

이런 분석을 통해 저자가 던지려는 메시지도 분명하다. 우반구 중심의 문화와 문명이 힘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직선적 진보에 대한 신념을 버리고 순환적 진보의 개념을 받아들이는 것이 첫걸음이다. 이어서 그가 제시하는 대안은 동양적인 것의 수용이다. "서양인들은 몇몇 선택된 사물에 집중적인 관심을 보이고 그 속성을 분석하고 범주화하여 그것을 지배하는 규칙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려는 경향이 강하다. 반면 동양인들은 전체적으로 접근하고 관계와 변화를 중시하며 범주화에는 덜 관심을 쏟는다." 서양은 좌반구에 지나치게 쏠려 있는 반면 동양은 좌·우 반구를 비교적 균등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인과 심부름꾼'이 뇌과학을 바탕으로 하는 문화론이라면, '퀀텀 브레인'은 '퀀텀(Quantum)', 즉 양자역학으로 뇌과학의 당면한 문제들을 풀어낸다. 책의 대부분은 뇌과학의 첨단연구에서 양자역학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소개하는 데 집중돼 있다.

"현대생물학이 두뇌를 이루는 조직을 세포보다 더 낮은 수준으로까지 파고들다 보니 한 세기 동안 물리학자들의 혼을 빼놓았던 양자 효과들과 맞닥뜨리기 시작했다." 근대과학의 기계론적 사고를 붕괴시킨 양자역학이 이제 "인간의 뇌는 기계"라는 기존 뇌과학의 전제를 뒤흔들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방대한 세포 속 구조물을 이루는 무수히 많은 단백질에서 매 순간 상상을 뛰어넘을 만큼 많은 양자 사건(事件)들이 일어나, 한데 엮여 망(網)을 이룬 수십억 개 신경세포와 몇조 개나 모여 몸을 구성하는 다른 세포들 속에서 벌어지는 끝없는 생명의 춤을 지휘한다." 그 춤의 원리가 양자역학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 또한 인문학적 관심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다. 결론 부분에 가서는 결국 이런 새로운 연구결과들이 신(神), 자유의지, 의식, 도덕 등 전형적인 철학적 난제들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다루고 있다. 아쉬운 점은 갈팡질팡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책의 마지막 문장이다. "나는 도로 제자리다. 당혹스럽기도 하고 좌절감도 든다. 모두 언젠가 들어본 이야기뿐 새로운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다. 아직도 나는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