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수도 베이징(北京)의 심장부인 톈안먼(天安門) 광장에 높이 9.5m의 공자(孔子) 동상이 세워졌다. 광장의 중심 도로인 창안제(長安街)를 사이에 두고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의 초상화와 마주 보는 자리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SCMP) 등은 중국 정부가 톈안먼 광장 동쪽 국가박물관 북문 광장에 공자 동상을 세우고, 11일 낙성식을 열어 일반에 공개했다고 보도했다.

신화통신 웹사이트 캡처

국가박물관 리모델링과 때를 맞춰 북문 광장에 세워진 공자 동상은 1.6m 높이의 석조 기단을 포함해 전체 높이가 9.5m에 달한다. 공자의 노년기 모습을 형상화한 이 동상은 중국 난징(南京)대 우웨이산(吳爲山) 교수가 제작했다.

이는 톈안먼 성루에 걸려 있는 마오쩌둥의 초상화보다도 훨씬 큰 것이다. 마오쩌둥의 초상화는 높이가 6m, 폭이 4.6m 정도다.

마오쩌둥은 공산주의 계급투쟁을 강조한 문화대혁명(1966∼1976) 기간에 공자의 사상을 철저하게 탄압한 장본인이다.

마오쩌둥은 자신의 정적(政敵) 임표가 공자 사상과 연관돼 있다는 이유로 이른바 '비림비공(批林批孔·임표와 공자 비판)' 운동을 벌이며 공자 사상을 억압했다. 역시 마오쩌둥의 정적이었던 유소기도 공자 사상과 관련해 비판을 받았다.

1973년 중국 공산당 이론지 '홍기(紅旗)'는 "유소기는 공자를 배알해 공(孔)·맹(孟)의 도를 팔아대고 공자를 높이는 희극을 연출했다. 임표도 공자를 들춰내고 주희(朱熹)의 철학을 표방했다"며 이들을 '혁명을 망치는 현대판 공자'라고 비난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역시 "공자가 노예제를 옹호했다"고 폄하했다.

공자 사상은 마오쩌둥이 숨지고 덩샤오핑(鄧小平)이 집권하면서 공식적으로 복권됐다.

중국은 현재 78개 국가 300여곳에 '공자학원(Confucius Institute)'을 세우고 공자 사상의 세계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반체제인사 류샤오보의 석방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별도의 평화상을 제정하고 여기에 '공자평화상'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SCMP는 중국 공산당과 정부가 최근 공자 사상을 강조하는 것은 중국의 '소프트 파워'를 강조하고, 서구 문화의 유입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이라고 지적했다. 또 중국의 많은 대학들이 유교 사상을 핵심으로 하는 중국학을 강화하고 있는 것도 물질화된 사회에서 중국인들이 정신적 안정을 원하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국가박물관의 한 큐레이터는 "창안제와 자금성 바로 앞에 동상이 세워졌다는 것은 공자의 정치적·문화적 상징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공자는 중국 전통과 문화를 대표하는 상징으로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