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장호가 세상을 떠난 지 곧 4주기가 됩니다. 북한 도발로 세상을 떠난 청년들 가족의 안타까운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지요. 그 분들을 위로하고 싶습니다."

지난달 30일 호주 시드니의 한 찻집에서 2007년 2월 아프가니스탄 폭탄 테러로 전사한 고(故) 윤장호(당시 27세) 하사의 형 윤장혁(36) 목사를 만났다. 윤 목사는 한국에서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2005년 호주로 건너와 한인 청년 교회 '시드니 처음사랑교회'에서 일하고 있다.

윤 목사는 "동생의 전사 소식을 들었을 때의 황망함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아프가니스탄에서 쿠웨이트 공군기지로 운구된 동생의 시신을 봤을 때 비로소 동생의 죽음이 실감났다"고 했다.

2007년 2월 아프가니스탄에서 폭탄 테러로 전사한 고(故) 윤장호 하사의 형 윤장혁(36) 목사. 윤 목사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를 방문한 한국 젊은이들을 돕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다산·동의부대에 파병을 자원한 윤 하사는 2007년 2월 27일 미국 딕 체니(Cheney) 부통령을 겨냥한 이슬람 무장세력 탈레반의 폭탄 테러 공격을 받아 세상을 떠났다. 귀국을 약 2주일 남겨놓은 때였다.

윤 하사는 중학교 2학년이던 1994년 혼자 미국 뉴욕으로 유학을 떠나 인디애나대학에서 회계학·국제관계학·부동산학 등 3개 학사 학위를 받고 한국으로 돌아와 자원 입대한 앞길이 창창한 젊은이였다.

윤 목사는 "집안이 넉넉하지 못해 돈을 많이 보내주지 못했기 때문에 장호는 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비를 스스로 마련했다"고 말했다. 아버지 윤희철(67)씨와 어머니 이창희(64)씨는 지금도 한 달에 1~2번씩 아들이 묻힌 현충원을 찾고, 용산 미군부대에 세워진 아들의 추모비를 찾아간다고 했다. 윤 목사는 "부모님이 아들이 전사한 아프가니스탄 바그람(Bagram)기지를 가 보고 싶어하신다"고 했다. 현재 외교통상부는 아프가니스탄을 여행 금지국가로 지정하고 있어 민간인 신분으로는 방문이 불가능하다.

윤 목사는 또 지난해 발생한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도발사건에 대해 "더 이상 이런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사한 군인 장병들의 가족들에게 "나라를 지키다 전사한 동생을 둔 형으로서 유족들의 말로 표현 못할 슬픔을 이해한다"고 위로의 말을 전했다. 윤 목사는 이어 "천안함 사건 때 한국에서는 현 정권에 대해 무조건적인 비판이 있었던 걸로 안다"며 "나라가 위기에 처한 때일수록 국민들이 화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생이 세상을 떠난 뒤 윤 목사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만 18~30세 젊은이들이 여행하면서 일할 수 있게 허용하는 관광취업비자)로 호주에 온 한국인 젊은이들을 상담하는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호주에서는 연 4만명의 한국인 젊은이들이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일하고 있다. "호주에서 일하는 젊은이들이 귀국해서는 나라의 기둥이 될 수 있도록 돕는 게 내가 장호를 위해 할 수 있는 소중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생을 떠올리던 윤 목사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