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2010년 민주주의 지수'에서 한국은 평가 대상 다섯 항목에 대한 평균이 10점 만점에 8.11점으로 조사한 167개 국가 중 20위를 차지했다. 이는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순위로 이웃한 일본은 평균 8.08점을 받아 22위에 자리매김했으며, 북한은 조사 대상 국가 중 최하위였다. 국제적으로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실시한 조사에서 이렇게 높은 평가가 나온 것은 이제 한국의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공고화되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이 결과를 보면서 과연 우리 민주주의가 그렇게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한 것인지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가 적잖을 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 수준에 대해 이처럼 외부 평가와 내부 인식 사이에 괴리가 존재하는 것은 민주성과 공정성을 위한 제도적 규칙이나 경쟁의 틀은 어느 정도 갖춰졌다고 해도 정치가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은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절차적·형식적 수준에서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일정한 진전을 이뤄냈지만 질적인 측면에서는 해결하고 극복해야 할 문제점이 적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실적으로 우리 정당 정치를 생각하면 당장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국회에서의 날치기 통과와 의원들 간의 몸싸움이다. 국민이 우리 정치 수준을 낮게 평가하는 중요한 이유도 정치적 갈등이 국회 내에서 제도적으로 해결되지 못하고 물리적 충돌로 이어진다는 점 때문이다.
그러나 물리적 충돌 못지않게 작년 말 국회에서 드러난 문제점은 예산·파병 같은 중대한 일이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은 채 날치기로 통과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은 우리 국회의 행정부 견제가 정책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방식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야당은 쟁점 사안이 생기면 이를 정치적 논란거리로 만들고 싶어 하고 여당은 무조건 막고 피하려고만 하기 때문에 국회 내에서 쟁점 법안에 대한 생산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못한다.
따라서 국회와 정당의 정책 역량을 높이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그동안 형식적이라고 할 만큼 소홀했던 예산안 심의 기간을 대폭 늘리고 예산결산위원회를 상임위원회로 바꾸는 등 전면적인 개편 작업이 필요하다.
흥미로운 점은 새로 국회가 구성될 때마다 적지 않은 수의 의원이 교체되지만 운영방식에는 별 차이가 생겨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새 인물의 선출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말해준다. 공천권이 여전히 소수 지도부의 손에 장악되면서 민심보다 당 지도부의 눈치를 봐야 하는 문제점이 계속되고 있다. 새 인물의 충원 범위 역시 지역주의 틀 속에 갇히면서 폐쇄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고, 최근에는 직업이나 계층 측면에서도 편향성이 강해지는 모습까지 나타나고 있다. '끼리끼리' 정당을 넘어서려는 노력은 우리 민주주의의 개방성과 포용성을 높이기 위해서 절실한 과제이다. 특히 내년에 국회의원과 대통령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투명하고 공정한 공천제도의 확립은 매우 시급하다.
참여민주주의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대세가 됐다. 인터넷을 통한 정치적 소통 구조가 갈수록 더 강화되는 추세를 보이고 과거와 같이 소수의 정치 엘리트나 오피니언 리더가 대중을 끌고 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이는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치 과정상의 매개 기구를 거치지 않고 터져 나오는 대중의 정치 참여는 그 결과에 대해 정치적 책임성을 묻기 어려울 뿐 아니라 포퓰리즘에 취약해지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
따라서 대중의 자발적인 정치 참여를 건강한 민주주의의 원천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국가와 시민사회를 잇는 매개체로서 정당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국민의 눈으로 볼 때 정당의 존재감은 선거 때를 제외하면 매우 미미하다. 우리 정당들은 사회적으로 제기되는 요구를 규합하고 다양한 이해집단과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는 정당으로 변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