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민(24·현대캐피탈)은 눈을 잘 맞추지 못했다. 잠시 고개를 들었다가 숙이기를 되풀이했다. "낯을 가린다"고 했다. 배구 코트에서 성난 사자처럼 포효하는 평소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소심한 AB형'이라는 우스개 성격 분류가 맞는 것도 같았다.
문성민은 '배구 중흥(中興)을 책임질 재목'으로 기대를 모은다. '월드스타' 김세진의 뒤를 이를 국제적인 거포로도 평가받는다. 하지만 2010 ~2011 시즌 프로배구 1라운드는 뛰지 못했다. 2008년에 신인 드래프트를 거치지 않고 외국에 2년간 나갔다가 돌아왔다는 이유로 1라운드 출전 정지를 당했기 때문이다. 그런 문성민이 28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우리캐피탈과 벌일 홈경기를 통해 데뷔한다.
9월에 한국배구연맹으로부터 징계를 받은 뒤 석 달 동안 입을 다물다시피한 그의 속마음이 궁금했다. 27일 천안에서 만난 문성민은 "(징계기간 중엔) 경기장에서 동료 선수들의 공을 주워주는 일만 했다. 자존심도 상했다"고 말했다.
◆"제 손 보면 다들 신기해해요"
문성민의 키는 198㎝이다. 신발 사이즈가 295㎜이다. 그런데 손을 맞대보니 비슷했다. 배구 선수라면 손이 클 것이라는 예상과 달랐다. 문성민은 이런 단점을 장점으로 바꿨다. "어려서 뛰어다니는 걸 좋아했어요. 발 빠르게 움직여 상대팀 블로킹이 오기 전에 때리는 스타일이죠. 손이 정말 작고 팔도 짧은 편이지만 스파이크를 하는 스윙은 더 빠르지 않나 생각해요."
문성민은 사실 키도 늦게 컸다. 부산 동성중 3학년까지 175㎝ 정도였다. 185㎝인 아버지의 키에도 훨씬 못미쳤다. 그 나이에 190㎝ 가까이 자라는 친구들을 보며 부러워했다. "배구를 그만둬야 될까 고민했죠. 그런데 고1 때 191㎝까지 큰 거예요. 운이 좋았죠."
이날 구단 선수들과 함께 먹은 점심 식사 메뉴는 부대찌개였다. 거구라 2~3인분을 뚝딱할 줄 알았는데 보통 사람들처럼 한 그릇을 비우곤 일어났다.
◆외국 진출 공격수 1호의 명암
부산 명륜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배구를 시작한 문성민은 "솔직히 고등학교 땐 '대학교만 가자', 대학교 땐 '국가대표 한번 해보자'는 식으로 목표를 세웠죠." 국내 배구 규정을 무시하고 외국행을 택해 이기적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선수의 말치곤 겸손하게 들렸다.
그는 경기대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독일 프리드리히 하펜팀으로 옮겨 갔다. 그해 여름 월드리그에서 활약하며 독일·그리스·터키·폴란드 등 5~6개국 팀으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았다. 프리드리히 하펜팀의 스텔리안 모쿠레스쿠 감독은 "한국에 가서 문성민을 직접 설득하겠다"고 나설 정도였다. 현대 김호철 감독이 1981년 이탈리아 배구 산탈 파르마에 입단한 전례 등이 있지만 프로 출범 후 공격수로 외국 리그에 진출한 선수는 문성민이 최초였다.
당시 국내 프로리그 신인 드래프트 대상이었던 문성민은 KEPCO45 지명이 유력했다. "KEPCO45가 싫어서 드래프트를 거부했다는 소리는 듣기 싫었습니다. 운동선수면 누구나 외국에 나가는 게 꿈이잖아요. 기회가 찾아와 나간 건데 다르게 비쳐속상했죠. 야구나 축구 선수는 축하받으면서 외국에 나가잖아요."
◆아시아 거포로 인정받은 두 시즌
우여곡절 끝에 배구협회의 동의를 얻어 진출한 독일 무대에선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세계 배구의 흐름이 워낙 빨라 기본기부터 애를 먹었다. '스텝'부터 고쳐야 했다.
"우린 스파이크를 할 때 기본이 스리 스텝입니다. 외국에선 스리 스텝 밟고 점프하면 공이 벌써 지나가요. 투 스텝으로 공을 때리면 세게 안 들어가요. 외국 선수들은 대개 투 스텝으로 때리는 데도 힘이 좋아 공이 묵직하거든요."
'용병' 신분으로 기대를 모았던 문성민이었지만 초기엔 외국 스타일의 배구에 적응하지 못해 벤치를 지키는 일도 있었다.공격 위주의 라이트에서 수비에도 가담하는 레프트로 포지션을 바꾸면서 돌파구를 찾았다.
모레스쿠 감독이 끝까지 믿어주고 많이 배려해줬다고 한다. 동료들도 텃세 없이 그를 받아들였다. "아시아 선수가 뛰는 게 신기했을 겁니다. 다른 선수들이 '서브 리시브 부담 갖지 말고 공만 높게 띄우라'고 하더군요."
신뢰를 쌓기 시작한 문성민은 독일 분데스리가 올스타에 뽑혔고, 팀의 분데스리가 5연속 우승에도 앞장섰다. 2009년 5월엔 터키의 할크방크로 이적해 간판 선수로 뛰었다. 꿈꿔왔던 세계 최고 무대 이탈리아가 눈에 보이는 듯했다.
◆예상보다 빨랐던 한국 복귀
그 무렵 문성민의 이탈리아 진출을 추진하던 네덜란드 출신 에이전트가 사망했다. 문성민의 한국인 에이전트는 국내 복귀를 타진하고 있던 중이었다. 항간엔 "문성민이 5년간 25억원을 줄 수 있는 팀을 원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문성민은 "에이전트는 제가 외국에서 고생했고, 나름대로 인정받았다고 봤기 때문에 협상을 하며 제 몸값을 높게 부른 게 아니었을까요. 저는 국내 몇 팀과 접촉한다는 얘기 정도만 알고 있었죠."
문성민은 KEPCO45로 돌아왔다가 트레이드 형식으로 현대캐피탈 유니폼을 입었다. 김호철 감독으로부터 "2~3년 뒤 이탈리아에 진출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마음이 쏠렸다.
하지만 다른 구단들은 '규정 위반'이라고 반발했다. 한국배구연맹은 9월에 문성민에게 이번 시즌 연봉 총액인 1억1000만원의 제재금 징계를 내렸다가 재심 끝에 1라운드 출전 정지와 제재금 1000만원 처분을 내렸다.
"돈이야 내면 되죠. 아무 문제가 없을 줄 알고 걱정 안 했는데…. 외국에 나간 것도 제가 처음이고 돌아와서 트레이드된 것도 처음이니 말이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다 지난 일이니 잊으려 합니다."
◆회오리바람 일으킬 수 있을까
문성민은 운동 외엔 취미도 별로 없다. 배구를 하기 전 피아노 학원에 다녔던 게 예·체능 활동의 전부다. 시즌 동안엔 술, 커피도 마시지 않는다. 컴퓨터 게임은 금세 질려 재미를 붙이지 않았다.
대학 시절 이후 여자 친구도 없다. 결혼 계획도 아직 없다. 이상형으로 꼽는 연예인이 있느냐고 묻자 "별로 관심이 없다"고 덤덤하게 얘기했다. 아버지가 부산의 한 교회 집사이고, 어머니도 독실한 신자라 배우자는 부모님 뜻에 따라 같은 기독교 신자를 고르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문성민은 "귀여우면서 섹시한 면을 다 갖춘 사람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있겠어요. 제가 운동을 하니까 내조 잘해주고 똑똑하면 그만이죠"라고 말했다. 자동차는 1년 전에 뽑은 현대 제네시스 쿠페 3.8. 외제차는 어떠냐고 묻자 "제 주제에 무슨"이라고 했다. 독일 리그 시절엔 면허가 없어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바른 생활 사나이'에 가까운 문성민은 코트를 그리워했다. 그가 2라운드부터 복귀하면 남자 배구판에 일대 지각 변동이 일어날 것이다. 문성민은 "제가 거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떤 공격 포지션도 잘 할 자신이 있습니다. 플레이를 잘하면 사람들이 좋아하고 못 하면 욕먹는 직업이 배구 선수잖아요. 성적으로 제 가치를 높이겠습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