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의 시대는 곧 저물 것이며, 더 이상 지배적 국제 공용어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영국의 저명한 언어학 저술가 니컬러스 오스틀러(Ostler)가 최근 펴낸 '최후의 국제어 : 바벨로 돌아가기 전까지의 영어'라는 책에서 "국제공용어(lingua franca)로서 영어의 몰락은 시간문제"라고 주장했다. 고대 근동(近東)의 아람어, 지중해 지역의 페니키아어, 중세 페르시아어 등 다양한 국제 공용어의 흥망을 추적한 뒤 내린 결론이다. 오스틀러는 옥스퍼드대에서 라틴어를 전공하고 MIT에서 산스크리트어로 박사학위를 받은 언어학자다.
그는 국제 공용어가 지위를 잃는 원인으로 정치적 쇠락(Relegation)과 경제적 몰락(Ruin), 사회적 탈락(Resignation) 등 '3R'을 꼽았다.
언어는 생각보다 쉽게 정치적 요인에 휘둘린다. 유일 강대국 미국의 힘이 쇠락하면 영어도 함께 약해질 수밖에 없다. 20세기 초 10% 정도였던 중앙아시아의 러시아어 해독률은 공산화 뒤 1959년엔 100% 가까이 늘었다가 소련 몰락 이후 다시 급감했다. 현재 영어를 쓰는 세계 10억명 가운데 제1 언어로 쓰는 수는 3억명 정도에서 제자리걸음이다. 스리랑카와 탄자니아 등은 민족주의 바람 속에 오히려 영어 공용어 제도를 폐지했다.
지난 300~400년간 영어의 세력 확장을 뒷받침한 앵글로색슨 국가의 경제적 우세도 약해지고 있다. 중국·브라질·러시아 등 신흥경제국에선 이들과 거래하는 외국인들이 현지어를 배워야 할 판이다.
영어의 또 다른 힘은 TV 등 미디어에 의한 사회적 확산이었다. 하지만 인터넷 시대를 맞이하는 영어는 인쇄술 시대의 라틴어와 비슷한 운명에 처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년간 인터넷에서는 아랍어와 중국어·포르투갈어·스페인어 순으로 영어 외 언어의 사용이 늘어났다. 중세에 인쇄기술이 처음 보급될 때도 서민층의 모국어 미디어 수요가 늘면서 라틴어의 쇠락을 앞당기는 계기가 됐다.
오스틀러 박사는 "영어가 몰락한 뒤엔 외국어를 배우는 행위 자체가 과거의 유산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음성인식과 즉석통역 등의 기술 발달로 "결국 인간이 통·번역할 필요도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