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하루 지난 26일, 서울 정동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건물 외벽에 내건 '사랑의 온도계'는 46.3도(모금액 1039억원)다. 주 모금기관인 올해 12월부터 내년 1월까지 모으기로 목표한 금액(사랑의 온도계 100도) 2242억원에 아직 한참 모자란다. 지난달 터진 '모금회 비리'와 구제역 확산 등으로 예년보다 모금이 훨씬 힘들어진 탓이다. 대기업들도 작년보다 기부 규모를 줄였다고 한다. 지난 15일 새 회장으로 취임한 이동건(72) 전 국제로타리클럽 회장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매일 기업과 개인을 찾아다니고 있다.
"국민의 노여움을 풀어 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장 모금은 돼야 합니다. 우리가 모금한 돈은 2만5000여 개인이나 기관에 전달됩니다. 대략 환산해도 400만명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거죠. 모금액이 줄면 수혜 대상 중에서 더 힘없고 약한 분들이 제외될 수 있어요. 그분들이 끼니 거르고 냉골에서 잔다고 생각해봐요. 그게 가장 가슴 미어지는 일입니다."
그가 회장직 제의를 받았을 때 주변에서는 '왜 하필이면 가장 힘든 지금 맡으려고 하나'라며 반대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국제로타리를 이끈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 기부문화의 '새 판'을 짤 수 있다는 생각에 매력을 느꼈다.
"기금의 모금·운용·배분에 있어서 투명성을 강화해야만 상처 난 신뢰가 회복됩니다. 인터넷 클릭 한 번으로 기부자들이 자기가 낸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겁니다. 국제로타리에서는 이미 그렇게 하고 있어요."
모금회는 전 직원을 상대로 '모금 관리에 도덕적 문제가 생길 때 해고당할 수 있다'는 서약서도 받을 계획이다. 지방 16개 지부가 모금액을 잘 배분하는지, 수혜 대상인 기관·단체가 받은 돈을 제대로 쓰고 있는지도 상시 감시하겠다고 한다. 그동안 16개 지부는 독자적으로 모금하고 운용해왔다.
"모금회가 생긴 지 12년 됐어요. 사회안전망 구축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은 높이 평가돼야 해요. 이번에 '비리'가 터지고, 직원들 사기가 떨어져 있습니다. 이곳 직원도 수도승은 아니에요. 다른 조직보다 훨씬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받는 만큼, 걸맞은 대우도 필요하죠. 그래야 유능한 인재들이 오지 않겠습니까."
이 회장은 부방그룹을 20년 넘게 경영해왔고, 봉사활동은 로타리클럽을 통해 40년 가까이 해왔다. 2008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국제로타리 회장을 맡았다.
"장사하는 사람은 남을 위한 배려가 약합니다. 이 배려를 더 높였으면 해서 시작한 게 로타리 활동이었죠. 미국에서는 잘 버는 사람이 기부 안 하면 사람 취급 안 합니다. 우리는 경제 발전의 역사가 짧아 이제야 기부문화가 조금씩 피어나고 있죠. 제가 모금회에서 '새 판'을 짜고, 그것이 우리 기부문화에서 날개 역할을 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