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도연(44)씨가 세 번째 작품집 '이별전후사의 재인식'(문학동네)을 냈다. 강원도 오대산 아래에서 농사짓기와 소설 쓰기를 병행하며 사는 그는 환상성과 리얼리즘이라는 이질적인 요소를 아우르는 작품들을 발표해 왔다.
김도연에게 환상은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비상구가 아니다. 삶에서 가장 절실한 것들을 환상의 형태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환상은 현실과 인간의 본성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수록작 '꾸꾸루꾸꾸 빨로마'는 바쁜 일상에 휘둘리며 살다가 깊은 병을 얻은 남자가 눈 오는 겨울, '약수터 민박집'에 장기투숙하며 겪은 신기한 경험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은 눈이 쌓여 손님이 끊긴 민박집을 그에게 맡기고 도시로 떠난다. 그런데 민박집에 갑자기 사람들이 찾아온다. 수십년도 더 된 것 같은 옛날 옷을 파는 영감에 이어 산신당(山神堂)에 제사를 지내겠다고 올라온 무당 모녀가 나타난다. 영문을 몰랐던 그는 30년 전 자신에게 버림받고 죽은 애인이 나타나자 비로소 그들 모두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남자는 "여기까지 찾아오다니"라고 말하지만 여자가 찾아온 것이 아니라 그가 자신의 마음속에 있던 여자를 불러낸 것이다. 여자는 대답한다. "찾아오긴 누가 찾아와. 네가 아프니 날 불러낸 거잖아."(30쪽)
김도연이 지닌 환상의 거울은 영혼의 맨얼굴에 떠오르는 미세한 흐름까지 포착한다. 남자는 그녀에게 "미안해. 늘 마음 한쪽에 옹이처럼 네가 자리하고 있었어"라고 사과한다. 하지만 여자는 "아프지 않음 삼십년이 지나도 넌 날 결코 찾지 않을 놈"이라며 그를 꾸짖는다. 소설은 사과의 말조차 실은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귀신까지 불러낸 남자의 이기적인 자기기만에 불과하다고 꼬집는다.
김도연의 환상 서사 속에서는 심야의 영동고속도로를 달리는 남자의 차 안에 고라니와 멧돼지가 들어와 말을 걸고(수록작 '바람자루 속에서'), 달리는 택시 안에서 운전사가 여자 손님과 사랑을 나누는데도 택시는 저 혼자 잘도 달린다.(수록작 '북대')
그 환상은 우리 사회의 그늘진 이면을 투시하는 엑스레이가 되기도 한다. 수록작 '떡'은 알코올 중독자인 한국 남자에게 팔려온 동남아 여인의 비극을 비춘다. 남편이 죽은 뒤 두 아이와 고향의 친정 식구를 먹이기 위해 매춘에 나선 여자는 죽은 남편의 환영으로부터 "돌아가라"는 충고를 듣는다. 고향으로 돌아가고픈 꿈마저 자신의 목소리가 아니라 남편의 영혼을 빌어 말함으로써 여자는 그 소망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고백한다. 문학평론가 정의진은 김도연의 환상 서사가 "삶과 현실과 사회의 막힘과 풀림이 변주해내는 불안과 희망을 고르게 껴안고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