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빈민촌 라모코카에서 아침부터 꽹과리·징·북·장구 소리가 울려퍼졌다. 신명난 곳은 '라모코카 원광유치원'. 7회 졸업식을 맞아 유치원에서 사물놀이를 배운 동네 청년 10여명이 축하 공연을 했다.
이 유치원은 원불교 김혜심(65) 교무가 2003년 세웠다. 김 교무는 이날 난생처음 검은 사각모와 가운을 입은 꼬마 졸업생 23명에게 일일이 졸업장을 건넸다. 아이들은 그에게 "두멜랑, 꼬꼬김" 이라고 인사를 했다. 수투(Sutho)족 말로 '안녕하세요, 김 할머니'란 뜻이다.
김 교무의 아프리카 봉사는 1995년 시작됐다. 이를 위해 원광대 약학대 학장직도 내놓았다. 그는 "소록도에서 8년간 한센인 의료 봉사를 했었는데, 아프리카는 소록도보다 훨씬 열악했다"며 "바로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남아공 이웃 나라 스와질란드에 '선샤인(Sunshine)' 쉼터를 세우고 에이즈 환자를 돌봤다. 해발 1100m 카풍아 마을에 보건소와 여성개발센터도 지었다. 김 교무는 "해외 원조 등 받는 데만 익숙해진 어른들의 의식을 바꾸기가 쉽지 않았다"며 "어린이 때부터 제대로 가르쳐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마침 2002년 요하네스버그시(市)에서 차로 2시간 거리인 라모코카의 추장이 그에게 "유치원을 세워달라"며 1만5000㎡(약 4500평)의 땅을 내놓았다. 김 교무는 허허벌판에 붉은 벽돌을 쌓아올려 유치원을 세웠고, 마을 전체의 배움터가 됐다. 한국에서 컴퓨터를 기증받아 청소년과 부인들에게 가르쳤다. 2004년부터는 청소년 태권도교실도 열고 사물놀이도 가르쳤다. 주민들과 '텃밭 일구기'운동에도 나섰다.
김 교무가 심은 씨앗은 열매를 맺어가고 있다. 컴퓨터 교육을 받은 주부가 취직했고, 태권도를 배운 청소년들은 국가대표가 됐다. 라모코카 사물놀이패는 남아공월드컵 때 '검은 악마'로 활동하며 대한민국팀을 응원했다.
이날 졸업식에서는 우수 농작물을 재배한 주민을 시상하는 행사도 열렸다. 김 교무는 상품으로 손수레와 삽 등을 건네면서 "이러면 더 열심히 농사일을 하지 않겠느냐"며 웃었다. 주민 보시멜로(61)씨는 "유치원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길과 공동묘지도 청소한다"며 "처음엔 보고만 있던 어른들도 이젠 동참하고 있다"고 했다.
장기 자랑에 열중인 아이들을 바라보던 김 교무는 "진짜 열매는 이 아이들"이라고 했다. "졸업반 이름이 햇님반(sunshine class)입니다. 아이들이 커서 남아공과 아프리카를 비추는 태양이 될 때까지 뒷바라지하고 싶어요." 사물놀이패가 "코리아 코리아 코리아 만세! 꼬꼬김 꼬꼬김 꼬꼬김 만세!"라고 외쳤다. 그는 지난달 대한민국 해외봉사상 대통령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