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이 끝난 지 보름이 지났다. 아시안게임이 끝나면 올림픽이 멀지 않은 법. 런던 올림픽까지는 겨우 1년 7개월이 남았을 뿐이다. 광저우에서 '될성부른 떡잎'으로 싹을 틔운 뒤 런던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내일의 스타들을 소개한다.


지난해 이봉주(40)가 은퇴하면서 한국 마라톤은 후손 잃은 집안 같은 처지가 됐다. 손기정, 서윤복, 함기용, 황영조, 이봉주로 이어진 영광은 맥(脈)이 끊겼고 후계자도 사라진 것 같았다.

그런데 지영준(29·코오롱)이 남아 있었다. 그는 지난달 중국 광저우 아시안게임 남자마라톤에서 2시간11분11초로 우승하며 잿더미 속에서도 싹은 틀 수 있음을 보여줬다. 13일 원주 상지대학교 운동장에서 그를 만났다.

광저우 아시안게임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지영준이 훈련에 앞서 조깅으로 몸을 풀고 있다. 그는 “내년 대구 세계선수권대회를 대비해 2시간6분대로 기록을 끌어당기겠다”고 말했다.

부슬비 속에서 훈련하고 있던 지영준은 "내년엔 기록을 2시간6분대로 당겨서 8월의 대구 세계육상경기선수권대회에 대비하겠다. 이후 2012년 런던올림픽 금메달에 도전할 것"이라고 했다.

'집단 무기력증'에 걸렸다는 비판을 받던 한국 육상은 광저우에서 금 4개를 땄다. 지영준은 이렇게 해석했다. "내년 대구 세계선수권을 앞두고 선수들도 위기감을 느꼈고 달라지기 시작한 겁니다."

지영준은 내년에 30세, 런던올림픽 때 31세가 된다. 마라토너로서는 절정의 나이다. "한국 마라톤이 퇴보하는 동안 세계는 무섭게 빨라졌죠. 하지만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은 달라요. 코스 난이도에 따라서 추격할 수 있습니다."

지영준이 마라톤을 시작한 것은 충남체고 3학년인 1999년이었다. 당시 코오롱 마라톤팀의 고(故) 정봉수 감독이 그를 발탁했다. 지병인 당뇨 합병증으로 고생하던 정 감독은 휠체어를 타고 운동장에 나와 지영준을 지켜봤다.

"휠체어를 보며 한 발이라도 더 뛰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렇게 해야 일가(一家)를 이룰 수 있구나 하고 느꼈지요." 하지만 그의 성장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지영준은 2003년에 일찌감치 2시간8분대에 진입했다.

그런데 부상 등이 겹치며 2005년 중반부터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다. 한때 기록이 2시간19분대까지 내려앉은 일도 있었다. 엘리트 선수로서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인 후퇴였다.

지영준을 바꿔놓은 것은 상지여고 중거리 육상선수 출신인 아내 이미해(28)씨였다. 아내는 지영준을 마라톤 선수 육성에 일가견이 있는 모교 육상팀 정만화 감독에게 소개했고 지영준도 마음을 다잡고 훈련하기 시작했다.

아내 이씨는 지금도 육상계 '내조의 여왕'으로 불린다. 첫 소득이 지난해 4월 대구 국제마라톤이었다. 지영준은 이 경기에서 2시간8분30초의 개인 최고기록으로 우승하며 완벽한 부활의 신호탄을 쐈다.

이번 아시안게임 때도 대표팀 코치를 맡은 정만화 감독과 콤비를 이뤄 일주일에 280㎞를 달리는 강훈련을 소화한 끝에 금메달을 따낼 수 있었다.

지영준은 "지금까지 우린 세계와의 차이에 절망했지만 지금은 어떻게든 기록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아직 한국 육상이 세계선수권에서 메달을 따낸 일이 없죠. 내년엔 다를 겁니다. 대구 선수권과 런던올림픽을 통해 육상의 중흥을 이뤄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