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장사 홀로 씨름판을 뒤집는다는 얘기는 이제 옛말이다. 5월부터 11월까지 18개 팀이 참가하는 '한씨름 큰마당' 리그가 올해 처음 열리면서 씨름은 명장(名將)과 장사들의 단합이 명성과 연봉을 좌우하는 단체 종목이 됐다.
이런 '현대식' 씨름의 초대 왕좌에 울산 동구청 돌고래팀이 올랐다. 무명(無名)이면서 리그 최연소인 39세의 젊은 감독과 조연급 장사 아홉으로 이뤄진 이 팀은 28승2패라는 놀라운 성적으로 모래판에 돌풍을 일으켰다.
이대진 감독은 충남 당진에서 농사짓고 갯벌에서 조개 줍는 부모 아래서 어렵게 자랐다. "겨울에 세 끼 먹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씨름도 공과금을 면해준다기에 했다. 그런 그의 삶을 바꾼 사건이 공주농고 1학년 때 일어났다.
큰 형이 오토바이로 사람을 쳐 당시 2000만원이라는 거금을 합의금 조로 내놓아야 했다. 돈 없어 앓아누운 부모를 보며 그는 '씨름으로 성공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영남대 출신의 유망주였던 그에겐 불운이 연속으로 다가왔다.
현대중공업 입단 보름 만에 교통사고로 오른쪽 무릎 인대가 끊어지더니 계속 잔 부상이 찾아왔다. 1996년엔 다시 부상을 당해 왼쪽 무릎이 고장 났다. 그렇고 그렇게 현역을 마무리할 즈음, 그에게 느닷없이 감독 제의가 왔다.
술·담배 한 번 안 하고 운동에만 몰두하는 '독종 근성'이 비로소 평가받은 것이었다. 이 감독은 넉넉지 못한 지방자치단체팀 사정상 특급 유망주를 데려올 수 없는 상황에서 선수들을 키워내기 시작했다.
당장의 성적보다 묵묵히 땀 흘리는 선수가 항상 그의 우선 영입 대상이었다.
이 감독은 "10%의 노력과 90% 타고난 기술을 가진 선수보다 90%의 노력과 10%의 타고난 기량을 가진 선수가 팀에 보탬이 된다"고 했다.
그는 선수들이 거품을 물 만큼 강도 높게 몰아붙였다. 매일 새벽 5시 30분 화정산에 오르며 하루를 열자 "실업팀 중 우리 훈련이 최고 힘들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렇다고 누구도 운동을 게을리할 수 없다.
훈련장에 이 감독과 주명찬(35) 코치가 가장 먼저 나오기 때문이다. 선수들은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김동휘(30·90㎏ 이하)는 "B급이던 내가 A급이 됐다"며 "지금 연봉 2배가 넘는 스카우트 제의도 모두 거절했다"고 했다.
어린 감독은 고된 훈련이 끝나면 '큰 형' 역할도 도맡았다. 이때엔 일절 씨름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 돌고래의 주장 이진형(30·80㎏ 이하)은 "포장마차에 모여서 가족 얘기, 아내 얘기를 할 때면 한 가족 같다"고 했다.
휴가 간 줄 알았던 선수들이 감독을 포장마차로 불러내 휴가 반납을 선언한 일도 있었다.
올해 리그 개인 승률 2위(14승1패)에 오른 최영원(20·85㎏ 이하)은 "모두 하나가 돼 나도 잘하고 팀도 우승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