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년 전 한국에 침투했던 무장공비가 북한의 최근 연평도 포격 도발에 대한 우리 군의 대응을 강하게 비판했다.

9일 정오 강원도 평창군 용평면 노동리 이승복 묘소에서 말끔한 양복을 입은 노인이 술잔을 올렸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이승복 추모제를 찾은 김익풍(69)씨다. 김씨는 1968년 11월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124군부대 소속 중위로, 동료 119명과 함께 울진·삼척으로 침투했던 무장공비 중 한 명이다.

일 강원도 평창군 용평면 이승복기념관에서 열린 제42주기 이승복 추모제에 1968년 11월 당시 울진·삼척지구에 침투해 고 이승복군을 살해한 무장공비의 일원이었던 김익풍씨가 참석해 이승복군 묘소에 참배하며 분향하고 있다.

김씨는 "전우가 옆에서 죽는데 100배, 1000배 응징해야 하는 것이 군인이다. 교전은 전쟁이고 군인은 전쟁에서 싸워 이겨야 한다"며 연평도 포격 도발 당시 군의 대응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김씨는 이어 "국민의 안보의식도 문제지만 군인까지 해이해지면 안 된다"며 "교전수칙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고 군인에게 정신력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행동"이라고 강조했다. 김씨는 또 "오늘은 그냥 술이나 한잔 올리고 가겠다"며 "침투할 당시 같이 생포된 다른 공비 한 명과도 연락을 해 언젠가는 같이 묘소를 찾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승복(당시 9세)군이 참혹하게 살해된 현장에서 살아남은 친형 학관씨는 "연평도 사건 보도를 접하면서 정말 이럴 수 있나 하는 생각에 많이 괴로웠다"며 "그들(북)이 아직도 그렇게 살아야 하는가"라고 되물었다.

이날 열린 이승복 42주기 추모제에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유족과 영관장교연합회 회원, 마을 주민, 교육계 관계자 등 150여명이 참석했다.

영관장교연합회 권오강 회장은 추도사를 통해 "북한 공산군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으로 국민 분노가 폭발 직전에 있다"며 "42년 전 고인이 죽음으로 북한 무장공비에게 대항한 그때의 반공애국 정신이 그립다"고 추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