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셜 네트워크'에서 냅스터 창업자 숀 파커는 페이스북 창업자 주커버그를 앞에 두고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다. "백만 달러는 쿨(cool)하지 않아. 뭐가 쿨하냐구? 십억 달러."
파커의 말과 달리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에 십억 달러 정도는 가볍다. 뉴욕타임스(NYT)는 3일(현지시각) 미국 벤처캐피탈(VC)들이 소셜 네트워크와 모바일 앱 등 신생 업체들에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고 보도했다.
벤처 캐피탈리스트의 풍부한 투자금은 신생 업체 중에서도 최정예부대에 몰리고 있다. 7년도 안 된 업체들이 몇십억 달러 투자금을 받고 있다. 가령 트위터의 투자금은 40억 달러까지 늘었다. 기업가치의 33%에 해당한다. 페이스북 게임인 팜빌(FarmVille)로 유명한 징가(Zynga)는 50억 달러 이상의 투자금을 조달했다.
치솟는 몸값에 구글의 인수 제안을 뿌리친 신생업체도 나왔다. 그루폰은 60억 달러에 자사를 인수하겠다는 구글의 제안을 거절했다. 8달 전만 해도 그루폰의 기업가치는 13억5000만 달러에 불과했다.
신생업체에 몰리는 대규모 투자붐에 십 년 전 닷컴 버블을 연상하는 이들도 생겨나고 있다. 버블의 징후로는 겨우 아이디어 하나 정도만 있을 뿐인 애송이 회사에 벤처캐피탈리스트와 대형 IT 업체들이 '대박'을 노리며 돈을 퍼붓고 있다는 점을 든다.
최근 몇 주간 신생 벤처업체는 거액의 투자 잔치를 벌였다. 기업체 간에 트위터 방식의 메시지를 전송하는 시스템업체인 야머(Yammer)는 최근 2500만 달러, 틈새블로그사이트인 텀블러(Tumblr)는 3000만 달러 투자금을 유치했다. 휴대폰용 그룹메시지전송 앱인 그룹미(GroupMe)는 900만 달러, 50명까지 허용하는 소셜네트워크 상에서 사진을 공유하는 아이폰용 앱 업체인 패스(Path)는 250만 달러를 조달했다. 패스의 경쟁업체 픽플리스(Picplz)는 500만 달러를 유치했다.
물론 이러한 투자붐에 비판적인 벤처캐피탈리스트도 있다. 실리콘밸리 IT업체의 인큐베이터(양산소) 역할을 해 온 500스타트업의 공동창업자 데이브 맥클러는 "쿼러(Quora), 포스퀘어(Foursquare), 스퀘어(Square)의 궁극적인 가치가 높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지금 이들 기업에 대한 투자금이 5000만~8000만 달러라는 사실은 정말 놀랍다"라고 말했다. 맥클러는 "창업자가 검증된 경력을 갖고 있고 꽤 많은 자금을 유치한 상태이므로 완전히 정신 나간 짓은 아닐 수 있지만, 눈살이 찌푸려지는 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저명 벤처캐피탈리스트인 프레드 윌슨 역시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서 쓴소리를 내뱉었다. 윌슨은 지난 6~9개월 동안의 투자붐을 죽 지켜봤다며 "투자자가 이상한 결정을 하는 경우를 자주 봤다"고 전했다. 그는 이는 대박 신생업체를 놓치지 않으려는 투자자 간의 경쟁 때문이라며 "지금 같은 상황이 좋게 끝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엔젤투자자인 크리스 사카는 "거품까진 아니라도 초기 기업에 굉장한 유동성이 몰리고 있으며 대부분은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들의 기업가치(밸류에이션)이 다시 떨어질 때까지 신규 투자를 보류한 상태다.
NYT는 또 다른 징후로 아직 상장도 하지 않은 이들 업체의 주식이 매우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페이스북의 장외 주식은 큰 인기 속에 파생상품까지 거래되고 있다.
십 년 전 닷컴 버블과 다른 점도 분명 있다.
NYT는 1990년대 당시와는 달리 최근 신생업체들은 상장을 진행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따라서 주가에 버블이 낄 염려가 없다. 스탠포드경제정책연구소(SIEPR)의 알렉스 굴드 연구원은 "지금도 버블이 생기고는 있지만 십년 전처럼 IPO를 실시해 막대한 자금을 조달하는 문화는 사라졌다"고 말했다. 십년 전 상장했던 플루즈닷컴(Flooz.com), 펫츠닷컴(Pets.com), 글로브닷컴(theGlobe.com)과 같은 기업들은 이미 스러진 상태. 아마존 정도만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대신 최근 신생업체들은 마이크로소프트(MS), 애플, 구글과 같은 대형 IT업체에서 자금줄을 확보한다. 경영컨설팅업체인 맥킨지는 이들 대형 IT 업체 한 곳이 보유한 자금으로 중소형 IT 기업 전체를 사고도 남는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IT 신생업체에 투자금이 집중되는 이유는 뭘까. NYT는 새로 뜨는 신생업체를 놓치지 않으려는 군중심리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IA벤처의 공동창업자인 로저 어렌버그는 "IT 업종 투자가 패셔너블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며 "예전에는 엔젤투자가 부유한 사람의 전유물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모든 이에게 번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대부분의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의 시각은 다르다. 시장에 어떤 부정적인 신호도 없다며 문제 없다고 항변한다. 샌프란시스코의 대형투자자인 론 콘웨이는 "거품은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페이스북, 자포스(Zappos), 구글, 트위터 등 500개 이상 기업에 투자 중이다. 이유로는 십 년 전과 달리 지금 신생기업은 사업모델을 갖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신생업체의 새로운 과제를 강조하는 시각도 나타나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유명 엔젤투자자이자 소프트테크 벤처캐피탈의 공동운용자인 제프 클라비에는 "앞으로 12~18개월 동안 신생업체들은 대거 투자를 받은 만큼 실력이 있는지 보여줘야 할 진짜 도전을 해야한다"고 전했다. 그는 민트(Mint), 유스트림(Ustream) 등에 투자하고 있다. 그는 "거품이 한 번에 크게 터져버리진 않을 수 있지만, 분명 거품이 사라지면서 업계는 피와 눈물로 물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