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들은 쉽게 가는 것 같은데, 왜 나는 한 계단 한 계단이 높고 험난할까 생각했거든요. 내가 자질이 없는 건가? 그만둬야 되는 건가? 꿈은 꿨지만 아직은 멀었다고 생각했는데…." 대한민국영화대상에서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이하 '김복남')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서영희(30). 의례적으로 "감사합니다"를 반복하기 마련인 자리에서 그녀는 작은 '고백'을 했다.

2010년 한국영화에서 최고로 강렬한 여성 캐릭터로 '김복남'의 서영희를 꼽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섬에 갇혀 지옥 같은 삶을 살다가 한순간 유혈 낭자 복수극의 주인공이 되는 김복남. "처음 시나리오 읽었을 때, 밤새 울었어요. 너무 마음이 아파서요. 지금 느끼는 이 심정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 어렵겠지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고요."

22일 오후 서울의 한 카페에서 서영희를 만났다. 그녀는 이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연기파 배우가 되어 있었다.

한국영화사에 전무후무했던 캐릭터는 서영희에게 배우로서 계속 살아갈 힘을 주었고 몇 개의 트로피를 선사했다. 그렇다고 바뀐 건 없지만, 아직도 실감이 안 나지만, 오히려 고민만 더 늘었지만, 올해는 서영희에게 일종의 '인증 샷'을 남긴 해다.

지극히 내성적인 아이였던 서영희는 이것저것 호기심으로 배우긴 했지만 금방 싫증을 내곤 했다. 태권도, 수영, 검도, 복싱…. 고등학교 땐 "돈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보석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미술학원에 다녔다. 수능 후에 머리를 식히려고 보러 갔던 '지하철 1호선'. 그 무대는 서영희의 마음을 흔들었다. "내가 정말 미술을 하고 싶은 건지 자문했는데, 그 분야에서 일하는 내 모습이 잘 그려지지가 않더라고요. 그런데 무대 위의 배우들이 너무 진지해 보였어요." 곧장 연기 학원으로 달려간 서영희는 그곳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고 동국대학교 연극과에 합격했다. 한때 배웠던 민요가 도움이 됐다. "뒤돌아보면, 배우가 되기 위해 이것저것 배우면서 경험했다고 합리화하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연기는 서영희의 마지막 지점이 되었다.

서영희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무대에 섰다. 뮤지컬 '모스키토'. 관객 중엔 데뷔작을 준비하는 박찬옥 감독도 있었다. 얼마 후 서영희는 '질투는 나의 힘'(2003) 오디션에 서 있었다. "오디션이 끝나고 나가는데 문 앞에서 정말 대(大)자로 넘어졌어요. 괜찮다고 하면서 나오는데 하얀 원피스에 피가! 무릎이 깨진 거예요. 그런데 감독님은 그 어리바리한 모습이 혜옥이라는 캐릭터에 맞다고 보셨대요."

착해 보이지만 강한 집착을 보이며 광기마저 드러내는 '질투는 나의 힘'의 안혜옥은 서영희라는 이름을 충무로에 알렸지만 한편으로는 20대 초반의 여배우를 가두었다. 순진해서 어떤 땐 바보처럼 보이기도 하며, 정신적·육체적으로 고통을 겪는 여성의 이미지. "남들이 하기 꺼리는 역을 하고 나면 '고생 많았지?' 그러면서 토닥거려 주세요. 그런 걸 즐겼다고 해야 하나? 그러다 보니까 밋밋한 역은 어색해지더라고요.(웃음)"

TV 드라마와 영화 '추격자'(2008)를 통해 인지도는 높아졌지만, 뭔가 다른 역할을 하고 싶다는 욕구도 함께 커졌다. 상황은 쉽지 않았고 "그만둬야 되는 건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됐지만 매년 두서너 작품씩 이름을 올렸다. 쉬면 다른 생각이 들 것 같았기에 가졌던, 모색의 시간이었다. "그저 나 혼자만 열심히 하고 있다는 느낌? 그러다 보면 나약해지고 소심해지고…."

'아홉 수'는 특히 지독했다. "스물아홉 살 때 정말 힘들었는데, 그때 어느 선배님이 그러셨어요. 지나가면 웃게 된다고. 자신은 그 나이 때 자살 시도까지 했다고. 그 얘기에 모든 고민이 날아갔어요. 즐기게 됐고요." 그렇게 서른 살을 맞이한 배우는 '김복남'을 비로소 맞이한 '진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내년부터는 갇혀 있던 운이 열린대요. 얼마 전에 타로점을 봤거든요. 하하하." 아마도 지금 촬영 중인 노희경 작가와 민규동 감독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그녀의 운을 펼쳐 줄 작품인 듯하다.

서영희는 어색하지 않게 늙어가며 연기하기를 꿈꾼다. "메릴 스트립을 좋아해요. (환갑이 넘은 나이에) 점점 예뻐지고, 귀여워지고, 사랑스러워지는데, 정말 최고예요. 저도 나이 들면, 그런 역할 할 수 있겠죠?" 스스로를 다질 줄 아는 배우의 소박한 소망. 원하는 것 이상으로 이루어지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