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포격으로 연평도에 화염이 가시지 않은 24일 오후 3시 20분쯤 한국전력 연평도발전소와 충민회관 사이 언덕길 7부 능선 근처를 수색하던 해경 특공대원들이 처참하게 훼손된 시신 2구를 발견했다. 북의 연평도 포격이 민간인을 가리지 않은 무차별 폭격임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2m 사이에 놓인 시신은 경림건설 소속 인부 김치백(61)씨와 배복철(60)씨인 것으로 확인됐다. 6개월 전 연평도에 온 김씨는 언덕길과 이어진 해병대 관사 신축 공사현장 작업 반장이었고, 배씨는 미장 반장으로 일했다. 경찰 관계자는 "시신 한 구는 하반신에 불이 옮아 붙은 것으로 보이고, 다른 한 구는 포탄 파편을 맞아 훼손 상태가 심하다"고 말했다.
공사현장 동료 김명근(44)씨는 "포탄이 떨어지기 직전 두 사람이 새참을 사러 가는 것을 봤는데 그때 타고 간 차가 포탄에 맞은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7년 전 뇌경색으로 몸이 불편했지만 회복 후 다시 공사장 일을 했다고 한다. 인천에 홀로 사는 배씨는 전국을 떠돌며 막노동으로 생활하다 4일 전 연평도에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오전 어둠이 걷히고 드러난 연평도 중심 마을은 전쟁이 휩쓸고 간 폐허 그대로였다. 연평도에서 나고 자란 주민 박춘분(50)씨는 24일 본지 기자와 통화에서 "전쟁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며 "1999년과 2002년에 벌어진 1·2차 연평해전 때는 몰랐는데 어제랑 오늘은 전쟁터가 어떤 곳인지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여태껏 총 한번 안 맞은 땅인데…. 주민들이 '더 이상 못 살겠다'고, '이주시켜 달라'고 아우성이다"라고 했다.
북한이 쏜 포탄을 직접 맞은 민간 가옥은 과자 부스러기처럼 부서졌고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채 전소(全燒)됐다. 다행히 포탄을 피한 집들도 옮아 붙은 불에 시커멓게 그을렸고 무너진 지붕 패널은 종잇장처럼 구겨져 있었다. 콘크리트 벽은 구겨진 채 구멍이 뻥 뚫려 철근만 남았고 지붕은 내려앉아 쪼개졌다. 포격을 맞은 가옥 5채 반경 30m에는 각종 옷가지, 생활용품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상가와 가옥의 유리창은 모두 산산조각이 났다. 한 식당 앞에는 김장을 하다 피신한 듯 절인 배추 더미들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마을 한가운데 면사무소도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 마을 주변 산도 벌건 불길이 따다닥 소리를 내며 밤새 번졌지만, 이날 오전 인천에서 소방 인력이 투입돼 진화작업을 한 끝에 대부분 불길이 잡혔다.
동부리 주민 김운선(75)씨는 "동네 서너 집은 불에 완전히 타버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며 "그 집에 살던 이웃들은 대피소에서 넋을 놓고 황망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인천으로 탈출한 오입분(81)씨는 "우리 집은 유리창만 깨진 상태라서 머물 수 있지만 포탄이 떨어질 때 생긴 진동 때문에 집이 흔들린 탓에 불안해서 들어갈 수 없었다"고 말했다.
마을 곳곳에는 섬 북쪽에서 10㎞를 날아와 떨어진 포탄 자국이 선명했다. 포탄 파편에 여러 군데 파인 도로 옆 콘크리트 담장에는 직격탄을 맞은 듯 직경 40~50㎝인 구멍이 생겼다. 가려져 있던 철근이 엿가락처럼 휜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들이 뛰어놀고 이웃끼리 담소를 나누던 골목엔 불탄 자전거와 부서진 창틀이 나뒹굴었다. 마을 중심가에 있는 가게 유리창들은 가장자리만 남은 채 갈기갈기 찢겨 있었다. 쑥대밭이 된 연평보건소에는 피 묻은 솜이 굴러다녔다.
포탄의 상흔(傷痕)은 주민들에게도 남았다. 주민 홍인숙(66)씨는 "어제 낮에 어마어마한 포 소리를 듣고 나니 불안해서 밤에 잠도 거의 못 잤다. 아들이 수협에 다니는데 포탄 때문에 3층 건물 일부가 무너질 때 유리창이 깨지고 창틀이 부서지면서 부상을 입었다"며 울먹였다. 인천에 나와 있던 성복순(56)씨는 "섬에 있던 남편이 포탄 떨어진 곳 바로 옆에 있다가 귀에 이상이 생겨 병원에 다녀왔다"고 했다.
포성이 멈춘 연평도는 날이 저물자 불안한 적막감으로 가득 찼다. 집에 전기가 복구된 일부 주민들은 유리창 없는 집에서 TV로 뉴스를 보며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집이 없어져 갈 곳을 잃은 주민들은 다시 대피소로 돌아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살길을 걱정했다. 한 주민은 "지금 마을에 남은 주민들은 대부분 연평도가 고향인 토박이들"이라며 "언제 그랬냐는 듯 마을이 조용해져 더 무섭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