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은행들이 뱅크런(대량 예금 인출) 사태를 맞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아일랜드 정부는 구제금융 자금 일부를 은행권 지원에 투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아일랜드 정부가 최대 은행인 뱅크오브아일랜드의 대주주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금융위기 이후 앵글로아이리시, 얼라이드아이리시 등 주요 은행들이 줄줄이 국유화된 데 이어 아일랜드의 주요 은행들은 모두 정부의 통제를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은행권 지원으로 정부의 차입이 예상보다 크게 늘 것으로 전망되면서 아일랜드의 국가 신용등급이 강등되는 등 험난한 미래가 예고되고 있다.
◆ 정부, 구제금융 은행에 투입할 듯
23일(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는 아일랜드 정부가 유럽연합(EU)ㆍ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지원받는 850억유로 규모 구제금융의 일부를 뱅크오브아일랜드의 지분 매입에 사용하는 것을 논의하고 있다며, 정부가 이 은행의 대주주가 될 채비를 갖추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일랜드 정부는 뱅크오브아일랜드의 완전 국유화는 피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구제금융 자금이 자본 확충에 사용될 경우 정부는 대주주가 될 수 밖에 없다고 아일랜드 정부 소식통은 전했다. 블룸버그가 인용한 2명의 소식통도 "뱅크오브아일랜드가 정부의 지원을 받게되면 결국 정부가 주요 주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경우 아일랜드의 주요 은행은 전부 정부의 통제 하에 들어가게 된다. 뱅크오브아일랜드는 금융위기 이후 유일하게 정부에 지분을 대량 매각하지 않고 살아 남았던 몇 안되는 은행이었지만 현재로선 별 도리가 없다. 앞서 지난 9월에 국유화된 2위 은행 얼라이드 아이리시에 대한 정부의 지분율은 유상증자 참여 등으로 연내 95% 이상으로 높아질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아일랜드 구제금융의 세부 내용은 아직 완료되지 않았지만, 은행권의 핵심자기자본(core tier 1) 비율을 12%까지 끌어올리기 위해서 대규모의 자금을 투입하는 방안이 포함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아울러 아일랜드 정부는 은행들의 대차대조표 축소와 관련한 목표치도 내놓을 방침이다. 주요 은행들이 5~10년에 걸쳐 비핵심 자산을 축소하거나 매각하도록 촉구한다는 계획이다.
◆ 뱅크런 우려..은행권 위기 높아
세계 최대 채권펀드 핌코의 모하메드 엘-에리언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블룸버그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유럽 관료들이 아일랜드 금융위기를 진정시키기 위해 신속한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면 심각한 뱅크런을 맞닥뜨릴 수 있다"고 밝혔다.
이미 아일랜드 은행권에서는 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얼라이드 아이리시 은행은 지난 19일에 예금 규모가 연초보다 17% 감소한 130억유로를 기록하고 있다고 밝혔다. 뱅크오브아일랜드는 지난 12일에 기업 예금이 8월말부터 9월말까지 급격히 빠져나가며, 예대율이 지난 6월말 145%에서 최근 160%로 급등했다고 말했다.
국제 신용 평가사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는 아일랜드 은행권에 투입해야 하는 자금이 커질 것을 우려해 이날 아일랜드의 장ㆍ단기 국가 신용등급을 모두 강등했다. S&P는 "아일랜드 정부가 부실화된 은행권에 추가적으로 자금을 투입하면 정부의 차입 규모가 당초 예상치를 넘어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일랜드의 국가 신용등급을 '등급 감시(Credit watch)' 대상에 등재한 S&P는 구제금융이 은행권의 자본 확충에 실패할 경우 신용등급이 더 낮아질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국가 신용등급이 추락해 아일랜드 은행들의 자금 조달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아일랜드 은행들은 자력으로 돈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유럽중앙은행(ECB)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지난 10월에 ECB로부터 대출 받은 규모는 1300억유로로 전달보다 7.3% 증가했다.
뱅크런 사태가 거론되는 등 분위기가 흉흉해지자 브라이언 레니한 아일랜드 재무장관은 "아일랜드 은행의 예금은 안전하며, ECB의 대출은 은행들의 자금 수요에 부합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 아일랜드 정부, 24일에 긴축안 공개
한편 아일랜드 정부는 24일에 적자를 줄이기 위한 4년 계획의 긴축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여기에는 내년에 지출 축소와 세수 증대로 60억유로를 줄이고 추가적으로 2012~2014년에 90억유로를 감축하는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긴축안을 제시하면 아일랜드가 구제금융을 받기가 용이해진다. 이와 관련해 유럽위원회(EC)는 아일랜드 의회가 내년 예산안을 지체없이 승인해 줄 것을 당부했다.
☞ 뱅크런(bank run)
은행이 파산하면 맡긴 돈을 제대로 되찾을 수 없다는 공포에 사로잡힌 예금자들이 예금을 대거 인출하는 사태를 일컫는다. 뱅크런이 발생하면 은행은 당장 돌려줄 수 있는 돈이 고갈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또 은행들은 빈 금고를 채우기 위해 기업에 꿔준 돈을 받으려고 하며, 이 과정에서 금리가 상승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기업들의 자금 조달 부담이 커지는 등 은행 뿐 아니라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