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영변에서 우라늄 농축을 위한 원심분리기가 가동되는 것을 목격하고 왔다고 밝힌 지그프리드 헤커(Hecker)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 소장은 방북 보고서에서 자신이 본 것을 자세히 묘사했다.
이번 방문까지 합쳐 모두 4차례 영변 핵시설을 방문한 헤커 소장은 20일 스탠퍼드대 웹사이트에 올린 8쪽 분량의 보고서에서 "이번 방문에서 목격한 우라늄 농축시설은 매우 현대적이며 깨끗했다"고 밝혔다. 북한은 그동안 농축 우라늄(enriched uranium) 프로그램의 존재를 숨겨왔지만, 이번 헤커 소장의 방문에서 시설을 전격 공개했다.
원심분리기가 설치된 시설은 120m 길이의 푸른색 지붕으로 된 건물이었다. 헤커 소장은 당초 "고작 몇 개의 원심분리기를 볼 것이라는 예상했지만, 1000개 이상의 원심분리기가 가지런히 정렬돼 있었다"며 "2층으로 된 50m 길이의 플랫폼에 3열로 원심분리기가 빽빽하게 들어섰다"고 현장을 묘사했다.
헤커 소장 일행은 원심분리기가 지름 20cm에 높이 1.82m의 원통형으로, 소재는 알루미늄인 것처럼 보였다고 분석했다. 북한 측 책임자는 원심분리기의 제원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았다.
북한 당국자는 이 시설이 작년 4월 착공해 며칠 전에 가동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파키스탄이 개발하고 이란이 사용하는 P-1형 원심분리기는 아니라는 것이 북한의 주장이다. 독일과 일본 모델에 착안해 북한이 자체 제작한 시설이라는 것이다.
또 헤커 소장은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 시설을 이용한) 북한의 농축 능력은 분리작업단위(SWU)당 연간 8000kg의 저농축 우라늄(평균 농축도 3.5%)을 생산할 수 있다는 점”이라며 “이 능력이라면 저농축우라늄(LEU)을 최대 2t까지 생산할 수 있고 최대 40kg의 고농축우라늄(HEU)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핵무기 1기를 만드는 데 농축도(度) 90%의 HEU 25kg 정도가 든다. 헤커 소장의 추산대로라면 연간 2기 정도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헤커 소장은 “이 시설과 같거나 더 큰 용량을 가진 고농축 우라늄 제조시설이 별도의 장소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우려를 전했다.
헤커 소장은 “제어실은 놀라울 정도로 현대적”이라며 “미국의 현대적인 처리 시설에도 적합한 수준”이라고 전했다. 제어실 뒷면에는 작동 수치를 나타내는 LED 패널이 있었고, 컴퓨터 통제장치들이 가동되고 있었다. 이어 그는 “2000여개의 원심분리기를 이렇게 빨리 구축할 수 있었던 데 대해 놀라움을 표시하며 현재 이 시설들이 실제로 가동되고 있느냐고 물어보자, 북한 책임자는 단호하게 ‘그렇다’고 답변했다”고 덧붙였다.
헤커 소장이 또 “국제사회는 이 시설이 고농축 우라늄 제조용으로 바뀌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지적하자, 북한 책임자는 “제어실의 모니터를 보면 누구라도 저농축 우라늄을 만들기 위한 설비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답했다.
이 보고서에서 헤커 소장은 북한이 2012년 완공을 목표로 영변에 짓는 25∼30메가와트급의 경수로 건설이 올해 7월 31일 시작됐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그는 "우라늄 농축시설이 설치된 속도를 보면 북한이 파키스탄 및 이란과 협력을 하는 것이 명백하다"며 "핵확산의 위협도 더욱 커진 셈"이라고 전했다.
헤커 소장 일행은 영변의 핵시설을 3시간30분 동안 안내받았다. 당시 현장 분위기에 대해 헤커 소장은 “북한 기술자들은 경수로와 우라늄 농축시설 등 2개 시설에 대한 기본만을 보여주라는 지침을 분명히 받았으며, 최소한의 질문에만 답변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