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 전쟁(The peace prize war).'
19일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현재 노벨평화상 시상식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초유의 파행사태를 '평화'와 '전쟁'이라는 상반된 두 단어로 압축적으로 표현했다. 중국 반체제인사 류샤오보(劉曉波·54)가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직후 "평화상에 대한 모독"이라고 맹비난했던 중국 정부는 이제 한발 더 나아가 다음 달 10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릴 평화상 시상식 자체를 저지하기 위한 '실력 행사'에 나섰다. 류샤오보는 물론 친척들까지 출국 금지시키는 한편, '힘의 외교'를 통해 다른 나라들의 시상식 불참 선언을 이끌어내고 있다. 노벨평화상 시상식이 단순한 시상 행사를 넘어 G2(Group of Two)의 반열에 올라선 중국과 서방세계 간 갈등구조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 등 6개국 시상식 보이콧 동참
19일까지 중국을 포함해 러시아·카자흐스탄·쿠바·모로코·이라크 등 6개국은 이례적으로 노벨평화상 시상식 불참을 통보했다. 이란도 불참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벨위원회가 평화상 수상자 선정 후 오슬로에 대사관을 두고 있는 36개국에 초청장을 보냈지만, 오슬로 주재 중국대사관은 이달 초 각 대사관에 시상식 불참을 요구하는 서한을 전달했고 결국 이 같은 결과를 이끌어냈다. 서한에는 "류샤오보를 지지하는 국가는 상응하는 결과(consequences)가 있을 것"이라던 중국 정부의 공개 경고와 유사한 내용이 담겼을 것이라고 영국 텔레그래프지는 보도했다.
노벨위원회의 게이르 룬데스타드 사무총장은 이에 대해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비난했지만 인도·파키스탄·인도네시아 등 16개국도 아직 "최종 결정을 위해 본국의 훈령을 기다려야 한다"며 참석 여부에 대한 답을 미루고 있다. 우리나라도 참석은 하되 참석 여부는 공표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반면 미국·영국·프랑스·독일 등 전통 서방 국가들은 일찌감치 참석을 통보한 뒤 중국의 행위를 비난하고 있다.
불참하거나 답변을 미루는 국가들은 중국의 막강한 경제파워를 의식해 눈치를 보고 있다고 외신들은 분석했다. 이들 국가는 대부분 입장 표명을 거부하고 있다. 다만 러시아측이 대사관 대변인을 통해 "중국으로부터의 압력이나 정치적 동기는 전혀 없다. 단지 그때 우리 대사가 출장이 예정돼 있다"고 밝혔지만 인디펜던트는 "이 말을 그대로 믿는 국가는 하나도 없다"고 보도했다.
◆메달·상금 시상행사 무산될 듯
다음 달 시상식에 류샤오보는 물론 그의 친척들도 참석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시상식은 열리되 시상 자체는 이루어지지 않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메달과 상장 및 1000만크로네(약 16억원)의 상금은 원칙적으로 수상자 본인이나 가까운 친척 등이 대리인 자격으로 수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수감 중인 류샤오보의 참석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 그의 부인 류샤(劉霞)도 수상 발표 이후 가택 연금하고 있다. AP통신은 "류의 친척 등 대리인으로 시상식에 참석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사람에 대해 공안(경찰)들이 밀착 감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노벨위원회측은 "시상식에서 다른 부대행사는 예정대로 열리겠지만 시상 자체는 무기한 연기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1901년 시작된 노벨평화상은 109년간 97명의 개인과 20개 단체에 대해 시상을 했지만 시상 자체가 모두 생략된 전례는 없다. 1936년 나치에 반대하던 독일의 언론인 카를 폰 오시에츠키의 시상식 때는 나치의 방해로 메달·상장 시상은 생략됐지만 상금은 그의 변호인이 대리인 자격으로 타갔다.
이전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인 소련의 안드레이 사하로프(1975년), 폴란드의 레흐 바웬사(1983년), 미얀마의 아웅산 수치(1991년)도 모두 시상식에 참석할 수 없었지만, 해당 국가들의 정부는 부인이나 아들이 대리인으로 참석하는 것까지 막지는 않았었다. 뉴욕타임스는 이에 대해 "중국 정부는 구소련이나 미얀마보다도 '도량이 더 작다'(less magnanimous)"며 "중국은 구소련이나 공산체제하의 폴란드보다 훨씬 국제적이고 책임이 있는 나라인데도 불구하고 경제력을 업고 이들보다 더 권위주의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