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광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49㎏급 1회전에서 대만의 양수쥔(楊淑君·25)이 베트남의 부티하우에게 9-0으로 리드하던 중 경기 종료 12초를 남기고 몰수패를 당하자 엉뚱하게도 대만에서 반한(反韓)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인터넷과 매스컴을 통해 "한국이 중국과 짜고 대만의 금메달을 훔쳐갔다"는 음모론과 "한국 때문에 유력한 메달 후보였던 양수쥔이 실격당했다"는 등 근거 없는 주장이 확산됐다.

17일 광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태권도 49㎏급 1회전에서 부정 센서 착용으로 몰수패를 당한 양수쥔. 그가 실격을 당하자 대만 국민은“한국이 양수쥔의 메달을 훔쳐 갔다”며 반한(反韓) 감정을 보이고 있다.

흥분한 일부 시민들은 18일 대만 총통부와 대만 체육위원회 앞에 모여 '한국 물건 쓰지 말자!' '한국 드라마 보지 말자!'는 등의 플래카드를 든 채 태극기를 불태웠으며 한국산 라면을 꺼내 짓밟기도 했다.

흥분한 시민들에게 기름을 끼얹은 것은 대만 마잉주(馬英九) 총통이었다. 마 총통은 19일 "양수쥔 선수 탈락 사건에 대한 결론이 나올 때까지 분투(奮鬪)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성명을 직접 발표하고, "참아야 한다"고 말해 비난을 받은 천셴쭝(陳顯宗) 체육위원회 부주임위원(차관)의 사표를 수리했다. 이날 양진톈(楊進添) 대만 외교부장도 "판정에 대해 엄중한 항의를 제기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시안게임 현장에서는 "대만이 한국 탓을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전혀 맞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대회 관계자들이 재구성한 몰수패의 과정은 이렇다. 양수쥔은 경기 10분 전 1차 장비 검사를 받았다. 정밀 검사를 하는 1차에선 전자 호구에 충격을 전달하는 센서가 발등과 발바닥 외에 다른 곳에 붙어 있지 않다는 확인을 받았다. 경기장에 들어선 뒤 주심에게 받는 2차 검사도 무사히 넘어갔다.

하지만 시작 직전 대회 시스템 운영 책임자인 한국인 에드워드 리(36)씨가 이를 발견해 주심인 스테판 페르난데스(필리핀)에게 알렸다고 한다. 이동주 한국팀 코치는 "2차 검사 땐 주심이 발이 아닌 상체와 전자호구에 대해서 주로 살펴보기 때문에 양수쥔이 발뒤꿈치에 부착한 부정 센서가 발각되지 않았을 수 있다"고 말했다.

주심은 양수쥔에게 센서를 떼라고 명령한 뒤 일단 경기를 진행했고 그동안 긴급 회의를 열었던 대회 조직위원회 산하 경기감독위원회는 양수쥔이 9―0으로 리드하던 상황에서 실격패를 결정해 통보한 것이다.

경기감독위원회는 "양수쥔이 경기 직전 10분을 이용해 고의든 아니든 규정에 어긋나게 발목에 센서를 부착했다고 판단했다. 세계태권도연맹 규정상 실격 판정은 정당하다"는 공식 입장을 내렸다.

한국은 이 종목에 선수가 출전하지도 않았고 대만이 문제삼았던 경기 심판진에도 한국인이 한 명도 없었다. 이 경기는 필리핀 주심과 중국, 쿠웨이트, 타지키스탄 부심이 진행했다.

양수쥔의 실격을 결정한 경기감독위원장도 중국인이었고 대회 심판위원장은 싱가포르인이었다. 태권도 관계자는 "양수쥔은 오히려 중국 선수의 라이벌이었다. 경기조직위 규정을 엄격하게 적용해 양수쥔을 떨어뜨렸다고 주장할 수는 있어도 한국을 걸고 넘어지는 건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양수쥔이 탈락한 후 우승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중국의 우징위에게 돌아갔다. 홍성천 아시아태권도연맹 부회장은 "한국이 대만의 메달을 뺏을 이유도 없고 중국과 음모를 꾸밀 리도 없다"며 어이없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