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가 어느날 시집을 냈다 고교 때 시에 빠져 나를 따른 그
시집 내느라 야산까지 팔았다
그가 사고로 숨진 날 죄책감이 가슴을 눌렀다
나는 그 제자에게 어떤 스승이었나"
한 제자가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어느새 5년째가 된다. 그가 남긴 시(詩)와 사진을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울컥 가슴 한 끝이 내려앉는다.
그는 내가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할 때 나에게서 국어를 배웠던 학생이다. 시를 쓰겠다며 담임도 아닌 나를 무척이나 따랐다.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대견스러웠다.
그는 한 대학의 국문과로 진학을 했지만 중퇴를 하고 말았다. 글 쓰는 사람이 글만 쓰면 되지 꼭 대학을 나와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나도 그만한 나이 때 글을 쓰겠다면서 휴학을 하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던 적이 있었다. "이 아이가 내 영향을 받아 이러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어서 그가 중도에 학교를 그만두고 나온 것이 오래오래 마음에 걸렸다. 시를 써가지고는 밥을 먹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인데, 그의 인생이 어떻게 될지 늘 걱정이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후 그가 찾아 와 주례를 서 달라고 했다. 당시는 아직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주례를 서는 것은 인정하지 않던 때였다. 또 내 삶도 제대로 못 사는 주제에 감히 다른 사람 인생의 첫 출발을 주례할 자격이 있느냐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간절한 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시집을 냈다. '공처일기'. 수제비를 먹으며 아내와 어렵게 사는 이야기였다. 베스트셀러를 꿈꾸며 시집을 내고 광고를 내느라 부모를 졸라 변두리에 있던 조그만 야산을 팔았다고 했다. 시집을 들고 온 그를 보고 "산까지 팔아 시집을 냈어야 하느냐. 너는 꼭 일을 저질러 놓고 나를 찾아오느냐"고 나무라기도 했다.
그런데 그가 어느 날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저녁 뉴스를 보던 나는 깜짝 놀라 급히 그가 안치된 병원으로 달려갔다.
대학 동년배로 만난 그의 아내는 "선생님, 어떻게 해요? 어떻게 해요?"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아침에 문을 나설 때 함께 가자고 하던 남편의 말에 따르지 못한 것을 한탄했다. 혹시 자기가 같이 갔더라면 이런 일은 안 일어났을 것이란 후회였다. 현관문을 열고 나간 것이 '이 지상의 마지막 문'을 닫는 문이 될 줄 몰랐다는 것이다.
그의 아내의 자책감 못지않게 나 역시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무겁게 가슴을 누른다. 흔히 자식 잃은 부모들이 죄가 많아서 자식을 먼저 보냈다고 통곡하듯이…. 제자가 잘 되길 바라는 것은 부모와 똑같은 마음이다. 시를 쓰겠다고 학교를 중퇴하고 어려운 인생길로 들어선 것은 혹시 내 영향이 아닐까. 막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내 영향을 받아 시라는 고생길로 들어선 제자에게 나는 너무 무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닌가. 내가 좀 더 세심하게 문학의 길을 인도했더라면 그의 인생행로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시를 쓰겠다고 음식점을 하고, 커피를 팔고, 과일 행상까지 했던 제자를 명색이 스승인 나는 몇번이나 찾아보았던가…. 끝도 없는 후회가 밀려왔다가 사라지고 또 밀려온다.
교사는 말만 아니라 행동이나 습관으로도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한 사람의 인생 안내자가 되고 진정한 스승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도 버거운 일이란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한 젊은이의 죽음 앞에서 절실하게 되묻는다. 교직생활 30여년 동안 나는 제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과연 내가 그들에게 모범이 되었고, 그들을 제대로 인도했는가. 나는 그 책임을 질 수 있는가. 어린 시절 나를 보고 꿈을 키웠을지도 모를 그 많은 제자들에게 나는 언제나 최선을 다하였는가. 스스로에게 묻지만 대답을 할 수 없다.
이제 후회 많은 스승으로 먼저 떠난 제자의 시가 빛을 보았으면 하는 바람만 남아 있다. 그의 유고 시집 '비틀거리는 아틀라스 그리고 문'이란 책이 오늘도 서재에서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