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에서 골잡이는 외로운 포지션이다. 앞을 바라보면 상대 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감독들은 웬만해선 스트라이커를 주장으로 임명하지 않는다. 지난 십수년간 국가대표팀 주장은 유상철, 최영일, 홍명보, 김남일, 이운재, 박지성 등 미드필더나 수비수, 골키퍼가 주로 맡았다. 공격수보다는 더 아래에 위치하는 미드필더나 수비수가 팀을 보는 시각이 넓다는 일반론 때문이다.
이제 한국축구의 금기사항을 깰 선수로 박주영(25·AS모나코)이 부상하고 있다. 국가대표팀 메인 스트라이커인 박주영은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리더 수업을 받고 있다. 후배들은 박주영을 졸졸 따라 다닌다. 환한 웃음과 재미있는 말은 박주영과 후배들을 하나로 묶고 있다. 대표팀 관계자들은 "후배들을 아우르는 능력이 보통이 아니다. 다들 깜짝 놀라고 있다"고 증언한다.
한발 더 나아가 박주영은 이제 새로운 경험을 준비해야 한다. 향후 A대표팀의 리더, 2014년 브라질월드컵 대표팀의 중심선수로 발돋움 해야 한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은 '박지성의 월드컵'이었다. 박주영이 나이지리아전에서 프리킥골을 넣고, 이청용이 2골을 몰아쳤지만 '캡틴 박지성'은 그 영향력으로 볼때 대한민국을 대표할만 했다.
하지만 박지성은 본인 스스로 남아공월드컵이 끝난 뒤 '이번이 마지막 월드컵'이라는 말을 했다. 국민적 열망이 그를 브라질월드컵으로 이끈다 해도 주장은 힘들다. 그렇다면 다음은? 박주영 차례다. 4년 뒤 박주영은 29세가 된다. 선수로서 정점에 선다. 실력은 무르익고, 프랑스리그에서의 맹활약을 디딤돌 삼아 빅리그, 빅클럽에 몸담고 있을 수도 있다.
이번 아시안게임은 박주영에겐 큰 기회다. 리더의 역할과 책임감을 배울 수 있는 무대다. 이미 박주영은 주장 구자철(21)을 비롯한 후배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라운드 리더도 세상사와 마찬가지다. 희생하고, 솔선수범하고, 같이 아파하고, 함께 기뻐해야 한다. 너무 앞서가면 시기질투를 받고, 그렇다고 너무 물러서면 비겁하고 옹졸하다는 손가락질을 는다. 적절한 보폭 유지는 참 어렵다. 이런 리더의 노하우는 듣거나 읽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피부로 느껴야 한다. 박주영이 광저우에서 건질 수 있는 귀중한 수확이다.
그렇다고 박주영이 당장 아시안게임 대표팀에서의 역할을 A대표팀에서 하란 얘기는 결코 아니다. 박주영은 아시안게임 대표팀에서는 고참(김정우 다음)이지만 A대표팀에서는 중간 정도다. 하늘같은 선배들이 즐비한데 너무 나서다보면 설레발이 요란하다는 소리만 듣는다. 타산지석으로 삼아야할 선배가 있다. 이천수(29)다. 까마득한 후배때부터 자기 색깔이 강했던 이천수는 대표팀 내에서 실력은 인정을 받았지만 철저하게 배척당했다. 남아공월드컵을 앞두고 몇몇 후배 선수들은 사석에서 "그래도 어려울 때 한 건씩 해주는 천수형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했지만 코칭스태프와 고참 선수들은 이천수를 결코 원하지 않았다.
박주영은 지킬 것은 지키고 대신 스스로를 강하게 단련시켜야 한다. 박지성은 J-리그 교토→네덜란드 PSV에인트호벤→잉글랜드 맨유 등 자신의 가치를 계속해서 높였다. 박지성의 실력은 자연스럽게 A대표팀 내에서 입지로 이어졌다. 허정무 전 대표팀 감독이 박지성을 주장으로 뽑은 이유는 세대교체 효과와 함께 실력에 대한 예우 때문이었다.
박주영 역시 진화를 멈추면 안된다. 박주영은 2004년 청소년대표팀(19세 이하)에서의 맹활약으로 '축구 천재'가 된 뒤 2005년 FC서울에서 18골을 넣으며 K-리그를 뒤흔들었다. 2006년과 2007년 슬럼프를 겪었지만 그때부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웨이트 트레이닝이었다. 축구를 향한 꿈을 키우며 몸을 단련시켰다.
준비된 박주영은 2008년 프랑스리그 AS모나코에 입단한 뒤 첫 해부터 팀의 주전 스트라이커 자리를 꿰찼다. 올시즌에는 포지션이 왼쪽 미드필더로 바뀌는 등 새로운 시련을 겪었지만 수비능력 강화와 골결정력을 높이는 집중력을 발휘하며 또 한단계 성숙했다. 이제 빅리그에서도 통할 수 있는 파괴력을 키우는 일만 남았다. 이 모든 준비가 순조롭다면 2014년 브라질월드컵 주장 완장은 박주영의 몫이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