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고선웅 작·김민정 연출)은 괴테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국에서 만든 창작물이다. 최근 10주년을 맞이한 이 뮤지컬은 연극인들까지 호감을 가졌다고 할 만큼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베르테르 역은 조승우·엄기준 등 많은 스타들이 거쳐 갔으며 현재 송창의·박건형이 번갈아 무대에 오르고 있다.
그런데 나는 개인적으로 이 공연이 재미가 없다. 일단 등장인물들에게 마음이 안 간다. 짝사랑 외에는 인생에 아무것도 없는(그래서 결국 자살하는) 베르테르는 속된 말로 '찌질' 그 자체고, 환한 미소로 '어머! 제게 정혼자(定婚者)가 있다는 말씀 안 드렸나요? 베르테르씨가 너무 친근하게 느껴져 알고 계신다고 생각했어요!' 같은 대사를 치는 롯데는 내숭인지 바보인지 한 대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싶다. 왜 굳이 드레스 입는 고색창연한 외국 이야기를 번안도 안 하고 뮤지컬화했는지도 궁금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이 뮤지컬을 좋아하는 이유는 뭘까?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이렇게 답한다. "노래가 좋잖아요!"
그러고 보면 뮤지컬 팬들에게 가장 큰 인기를 누린 한국 뮤지컬 OST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아닐까 싶다. 요즘 추세인 '길게 끄는 우렁찬 고음을 위해 달리는 드라마틱한 넘버들'이 아니라 편하게 흥얼거릴 수 있는 곡들이다. '하룻밤이 천년/ 하룻밤 꿈이 만년~' '당신의 그 미소만큼씩/ 내 마음은 납처럼 가라앉는데~' 같은 서정적 가사 때문에 사랑을 받은 이 작품의 노래들은 대체로 우울하다. 어쩐지 모래시계 주제곡(우우우 우우~)이나 김원중의 '바위섬'처럼 386세대와 1990년대 초·중반 학번의 정서랄까, 다 드러내지 않고 누르면서 슬퍼하는 애조가 있다.
롯데가 피아노로 연주하는 곡 '금단의 꽃'을 듣고 있자니 마음이 짠해지는 게, 없던 첫사랑의 상처가 생기는 것 같은 착각도 들었고 여자의 적(敵) 비호감 롯데의 뒷모습도 가련하고 예뻐 보였다. 음악의 힘은 참으로 놀랍다.
▶30일까지 서울 유니버설아트센터. 1544-1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