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국시대 사상가 순자(荀子)가 '권학편(勸學篇)'에서 말했다. '쪽에서 얻어낸 푸른 빛이 쪽빛보다 더 푸르다(靑取之於藍而靑於藍)'. 제자가 끊임없이 갈고 닦으면 스승을 능가한다는 뜻이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란 고사성어와 꼭 맞는 상황이 14일 광저우 아시안게임 사격장에서 일어났다. 이대명(22)이 사격 에이스이자 존경하는 선배 진종오(31·6위)를 제치고 사상 첫 대회 3관왕에 오른 것이다.

그는 남자 10m 공기권총에서 금메달을 획득해 50m 권총 단체전, 10m 공기권총 단체전에 이어 세 번째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대명은 2006년 태극 마크를 달았을 때부터 진종오와 태릉 룸메이트였다.

광저우 아시안게임 사격 3관왕에 오른 이대명(오른쪽)이 진종오와 함께 10m 공기권총 단체전 시상대에 올랐다. 이대명은“존경하는 선배 (진)종오 형과 함께 지낸 것이 최고의 훈련이었다”고 말했다.

'새싹' 이대명이 2004년 아테네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진종오를 보고 배워야 한국 사격의 미래를 이을 수 있다고 판단한 김선일 감독의 '작전'이었다. 이대명도 자신을 낮췄다. TV로만 보던 대스타 진종오의 모든 것을 따라 했다.

진종오가 폼이나 총을 바꾸면 어느새 이대명의 것도 똑같아져 있었다. 축구 대신 바다낚시로 취미를 바꾼 것도 진종오의 영향이었다. 김선일 감독은 "종오가 낚시하면서 잡념을 버리는 것을 보더니 대명이도 금방 낚싯대를 들고 다니더라"며 "종종 둘이 같이 낚시하러 다녔다"고 말했다.

진종오를 넘어서기는 쉽지 않았다. 베이징올림픽에서 진종오가 금메달을 따냈을 때 이대명은 10m 공기권총 10위, 50m 권총 20위에 그쳤다. 세계선수권을 나가더라도 이대명은 언제나 '2인자'였다.

하지만 이대명은 경쟁심 대신 진종오가 시상대 정상에 서기까지의 모든 과정과 기뻐하는 모습까지 마음속에 담았다. 이대명은 "종오 형의 뒤를 고스란히 밟겠다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이대명은 여기에 진종오가 "나도 못 따라간다"고 인정할 정도의 노력과 마인트 컨트롤 능력을 더하며 결국 아시안게임 정상에 설 실력을 갖출 수 있었다.

이날 결선에서도 첫발에서 7.9점으로 흔들렸지만 이후 만점(10.9점)에 가까운 10점대를 연속으로 맞히며 중국 강호 탄중량의 추격을 뿌리칠 수 있었다.

이대명은 "종오 형과 함께 지냈던 것 자체가 나에겐 훈련이었다"며 "형수님보다 더 많은 시간을 나와 함께 보내준 종오 형이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대명도 선배 진종오를 도왔다.

어린 나이에 무섭게 실력을 키우면서 선배를 계속 자극한 것이다. 진종오는 "대명이가 계속 올라오지 않았다면 내가 나태해져 운동을 그만뒀을 수도 있다"며 "앞으로도 둘이 경쟁하면서 한국 사격도 더 성장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 선배는 "어린 나이에 큰 무대에서 부담감을 떨쳐낸 어린 후배가 자랑스럽다"고 뿌듯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