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석탑(石塔)과 천 개의 불상(佛像)이 있었다는 전남 화순 운주사(雲住寺)는 운주사(運舟寺)라고도 한다. 신라 고승 운주(雲住) 화상이 지었다는 설(說)도 있고, 신라 말 도선 국사가 배[舟] 모양인 한반도가 동쪽에 산이 많아 무거워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서쪽인 이곳에 천불천탑(千佛千塔)을 만들었다는 말도 있다. 고려 초 승려 혜명(惠明)이 1000명과 함께 축조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무속신앙에서 신선인 마고(麻姑)할미 창건설도 내려온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뒷받침할만한 문헌이 부족해서 정확히는 알 수 없다. 지금은 석탑 12기와 불상 70여기가 남아있다.
12~13일 열린 '길 위의 인문학'은 신비로운 절 운주사에서 시작했다. 조선일보·교보문고·국립중앙도서관이 주최하고 문학사랑·한국도서관협회·대산문화재단이 후원하는 11월 첫 번째 탐방의 주제는 '기다리는 마음을 새긴 화순'이었다. 탐방에 참가한 '길 위의 인문학도' 104명은 역사와 신화, 문학과 철학을 넘나들면서 운주사~화순 고인돌 유적~담양 소쇄원~쌍봉사로 이어지는 길을 답사했다. 정호승 시인, 한형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철학), 이재범 경기대 교수(한국고중세사)가 초빙강사로 이들과 함께 했다.
문헌이 없는 곳에서 상상력은 꽃을 피운다. 탑신(塔身)에 기하학적 무늬를 새기거나 원반형 옥개석을 얹은 이상한 석탑들, 웃는 듯 찡그리는 듯 다양한 얼굴을 한 석불(石佛)을 보며 탐방단은 저마다 다른 상상에 빠져들었다. "이 부처님은 성모 마리아상(像) 같아요." "혹시 외계인들이?" "문드러진 얼굴을 한 부처님 보니까 눈물이 날 것 같아"…. 이재범 교수는 "불교미술사에서는 양식의 유래를 알 수 없어 이형(異形)석탑, 이형불상으로 분류한다"고 설명했다.
운주사 서쪽 언덕 너른 바위에 새겨져 있는 와불(臥佛)이 일어나면 이 모질고 험난한 세상이 개벽(開闢)하고 평화의 세계가 온다는 전설이 있다. "여러분은 이 와불이 일어나길 바라세요?" 이 교수가 묻자 "아니요!"라는 대답이 더 많다. 이 교수는 "저도 그렇습니다. 와불이 일어나면 더 이상 희망이 없어지잖아요"라고 했다. 정호승 시인은 운주사 와불을 보고 쓴 시 '풍경 달다'를 즉석에서 낭송했다.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 먼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 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
한형조 교수도 상상을 펼쳤다. "저는 이곳이 불상과 석탑을 만드는 공장이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여기저기 석탑을 대충 부려놓은 것도 그렇고…. 불상을 만들고 배우는 도제들이 여러 가지 양식을 실험한 것이죠. 불상이 배를 타고 운반되는 모습에서 운주(運舟)라는 이름도 나온 것 아닐까요?" 한 교수는 "제멋대로 만든 재즈(jazz)형 불상이 멋있다"면서 "조선시대에는 이런 상상력이 제한되었던 것이 아쉽다"고 했다.
탐방단은 늦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숙소인 화순 금호리조트에서 시와 음악이 어우러진 '문학의 밤' 행사를 가졌다. 성우 서혜정씨가 사회를 본 행사는 밤 11시까지 계속됐다. '이등병의 편지' '가을 우체국 앞에서' 등을 작사·작곡한 가수 김현성씨가 정호승 시인의 '풍경 달다'에 곡을 붙인 노래 등을 불러 큰 박수를 받았다. 정호승 시인은 '내 인생에 힘이 되어주는 시'란 주제로 강연했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정 시인은 자작시 '산산조각'을 설명하면서 "깨진 종은 깨진 종소리가 나지만 완전히 깨어져 산산조각이 난 종(鐘)의 파편은 다시 맑은 종소리가 난다"면서 "우리 삶의 깨어진 파편마다 맑은 종소리가 숨어 있다는 것을 예전에는 몰랐다"고 말했다.
이틀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탐방단은 각각의 추억과 깨달음을 얻고 돌아갔다. 이번 탐방의 최연소 참가자인 전지수(17·남해 제일고 2년)양도 분명 길 위에서 '한 소식' 했다. "운주사에서 찌그러진 얼굴을 한 불상을 봤어요. 고통스러운 표정이었죠. 저도 지금은 대학입시 공부하느라 힘이 들어요. 그렇지만 불상을 보면서 나만 고통스러운 게 아니구나, 내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고 느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