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영화계가 에로티시즘으로 뜨겁다. 국내 최초의 3D 베드신을 표방한 '나탈리'가 불을 붙였다. 주연 여배우 신은경이 "한국 정서로는 이해가 안 될 부분까지 심하게 노출했다"고 밝힌 '두 여자'는 18일 개봉한다. 외국 에로영화들도 몰려온다. 중국 4대기서 중 하나를 스크린으로 옮긴 '금병매'(25일 개봉)가 대표적이다. 그럼 한국영화에서 에로티시즘의 역사는 어떨까. 최근 에로 붐을 계기로 한국영화 에로티시즘의 역사를 두 차례로 나눠 되짚어 본다.
[한국영화의 에로티시즘①] 한국영화에서 처음 외설 시비에 휘말린 작품은 유현목 감독의 '춘몽'(1965)이다. 치과 치료를 받던 남녀가 마취주사를 맞은 뒤 무의식 상태에서 정사를 벌인다는 내용이다. '한국 최초 본격 베드신 삽입 영화'로 기록돼 있다. 하지만 여배우(박수정)는 사실 나체가 아니라 살색 타이즈를 입고 있었다. 그마저 편집 과정에서 삭제했다. 그런데 검찰은 촬영 현장의 사진을 근거로 감독에게 외설죄를 뒤집어 씌웠다. 징역 1년6개월에 영화감독 자격 정지 판결을 내렸다. 대표적인 작가주의 감독인 유현목은 국내 최초의 외설 감독이 됐다.
'시'로 올해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윤정희도 음란죄 혐의로 검찰에 소환된 적이 있다. 신상옥 감독의 '내시'(1968)에서 후궁(윤정희)과 상궁(도금봉)의 동성애 뉘앙스 장면이 문제가 됐다. 검찰은 이 영화를 음란물로 규정해 신상옥 감독을 입건했다. 꽃미남 배우들이 딥키스하는 장면을 클로즈업으로 보여주고('쌍화점'), TV 드라마에 동성애자가 등장하는('인생은 아름다워') 요즘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시대 분위기도 보수적이었다. 한국영화 최초로 키스신이 등장하는 '운명의 손'(1954)도 뒷얘기를 남겼다. 여주인공(윤인자)의 남편이 감독을 고소하기도 했다. 키스 수위는? 그냥 가볍게 입술을 대는 수준이었다.
김기영 감독은 인간의 성적 욕망을 그로테스크하게 표현한 '하녀' 시리즈를 발표했다. '하녀'(1960)의 이은심은 이 영화의 강렬한 이미지 때문에 다른 영화에는 출연하지 못했다. '충녀'(1972)에서는 테이블 위에 알사탕을 뿌려놓고 정사를 벌이는 장면을 리얼하게 표현했다. 당시 20대 중반 윤여정의 풋풋하면서 농염한 매력이 화제를 모았다.
1970년대에는 '호스티스 영화'가 붐을 이뤘다. 산업화, 도시화 흐름 속에서 '별들의 고향', '꽃순이를 아시나요', '영자의 전성시대' 등이 잇달아 상영됐다. '2세대 여배우 트로이카' 장미희,유지인,정윤희 등이 호스티스로 출연했다.
장르물로서의 에로영화가 등장한 것은 1980년대다. 전두환 군사정권의 3S 정책의 영향이었다. 정윤희 주연의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1980),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1981)와 같은 토속 에로물이 80년대를 열었다. 그러나 본격 에로영화의 등장을 알린 영화는 정인엽 감독의 '애마부인'(1982)이었다. 심야극장 시대의 개막과 맞물려 장안의 화제를 모았다. 육감적인 몸매를 자랑한 안소영은 최고 에로스타로 떠올랐다. 안소영이 속살이 훤히 비치는 옷을 입은 채 말을 타고 들판을 달리는 포스터는 뭇남성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애마부인'은 96년까지 13편이 시리즈로 만들어지는 인기를 누렸고, 현재까지도 한국 에로영화의 대표작으로 첫손에 꼽힌다. 각종 '○○부인' 시리즈의 효시가 됐다. '반노', '빨간 앵두' 시리즈도 충무로 에로티시즘을 이끌었다.
80년대 에로영화 중에서 이두용 감독의 '뽕'(1985)을 빼놓을 수 없다. 용담골이라는 일제시대 농촌마을을 배경으로 인간의 욕망, 신분 제도, 공동체 사회의 내밀한 관습 등을 빼어나게 형상화했다. 몸을 팔고 쌀이나 돈을 받아 살아가는 안협댁(이미숙), 유일하게 안협댁과 자지 못한 머슴 삼돌이(이대근)의 행동 등을 해학적으로 묘사했다.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인정받았다.
80년대를 수놓은 에로영화는 더 많다. 조선시대 기생이 양반들과 벌이는 자유분방한 성을 그린 '어우동'(1985), 정력을 상징하는 오줌 줄기가 바위를 떨어뜨린다는 식의 과장된 유머가 눈길을 끈 '변강쇠'(1986) 시리즈, 무릎에서 참을 수 없는 성적 쾌감을 느끼는 여성을 그린 '무릎과 무릎 사이'(1984)가 에로영화 전성기를 이끌었다. 안소영, 이보희, 오수비는 에로배우 트로이카로 이름을 날렸다. 나영희 주연의 '매춘'(1988)은 체모 노출 소문으로 서울에서만 43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빅히트를 기록했다.
그러나 1980년대 에로티시즘은 '표현의 자유'를 핑계로 여배우의 속살과 신음소리만 부각시킨 일부 작품들 때문에 스스로 자멸을 초래했다. 80년대 후반부터 급격히 위축되면서 주도권을 에로 비디오에 넘겨줬다. 에로 비디오는 진도희 등의 육체파 스타를 앞세워 90년대에도 남성들을 유혹했다. 임정식 기자 dada@sportschosun.com